코끼리표 전기밥솥, 커다란 꽃무늬 보온 물통, 법랑 냄비. 옛날에는 이런 것이 있는 집은 웬만큼 사는 집이었다. 이 물건들을 어렸을 때 우리 집 부엌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집이 잘 살아서라기 보다 일본으로 시집간 이모 덕분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 살았던 부산은 변두리에 밭농사를 짓는 곳이 많았던, 도시라기보다 시골에 가까운 동네였다.
그 당시에는 응접실이 있는 양옥집에 사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두 명 있었고(아버지가 공장 사장님 또는 공무원, 내 기억으론 그땐 회사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비슷비슷하게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있어 급식이나 수업료에 차등이 있었고, 그 등급을 정하기 위해 매년 학기초에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 한 장의 종이에는 주민등록등본을 뛰어넘는 개인정보가 있었으니 가족관계, 부모님의 나이와 학력, 직업뿐만 아니라 냉장고, 전화, 티브이등의 가전제품란도 있어 그 유, 무는 그 집의 경제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전기밥솥도 그속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연탄을 연료로 쓰는 집이 태반인 그 당시 전기밥솥은 재산목록에 오를만큼 귀했기 때문이었다.
그 조사서는 환자가 진료전에 작성하는 검진표처럼, ‘가정방문’의 자료로 사용되었다. 요즘의 잣대로는 개인정보유출에,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방송 감이지만, 그땐 그게 나름 최적의 민주적인 방법이었으리라.
한 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음식을 끓이고 담던 물건들은 이제 쓰임을 잃고, 온기마저 식은 채,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다.
물건들만 남긴 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존 버거의 말처럼 사라진 것은 어딘가에 숨어있다.
술래잡기를 하듯 기억 한켠에 꼭꼭 숨어있다가
그들과 애환을 같이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물들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고 어느 순간 또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그림 속 물건들은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몸짓을 불러오고, 그들과 보냈던 따뜻한 한 때를 기억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