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뒤편 적당한 경사로의 대로변 카페, 노란 은행나무가 가로등을 켠 듯,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밝힌다.
2층, 통창, 뷰, 작업실 셋팅 완료!더이상의 망설임은 시간 낭비일뿐이다.
지금은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시간,
섬광같이 짧은 조우의 풍경은 매혹적이다.
나무는 숨겨놓았던 근육을 슬쩍슬쩍 자랑하듯 내보이며
빈 가지 사이로 가려져 있던 풍경을 내보인다.
연극의 막이 올라가듯, 점. 점. 다가오는 풍경.
작업실을 나와 어반 스케치를 하면서, 내가 앉는 모든 곳이 작업실이 되었다.
공짜 작업실이다 보니 ‘멀리서 보면 풍경, 가까이에서 보면 전쟁’, 흔히 패러디되는 이 말은 어반 스케치에도 딱 맞는 말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스케쳐의 모습은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일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사물이나 풍경의 포착, 버리고 취할 것의 선별, 적절한 표현법과 재료의 선택, 선 하나 긋기 전, 그 짧은 시간에,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 내 머리는 분주해진다.
하지만 그중의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리잡기, 아무리 매력적인 장소라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 최고령 '주상복합' 서소문 아파트를 그리러 갔을 때, 하천 위에 길게 늘어선 아파트를 그릴 수 있는 곳은 버스가 다니는 8차선 도로 위밖에 없었다. 매체에서 보이던 아파트 그림은 사진 작업이었음을 알고 허탈하게 돌아선 적이 있다.
차가 다니는 대로변, 사람들의 보행에 방해가 되는 중앙 통로, 한여름 땡볕, 한겨울 해가 들지 않는 응달, 눈, 비,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곳, 흡연구역 등은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패스해야 한다.
어반 스케치의 기본값이 ‘자연과의 싸움’이지만 작품보다 중요한 것은 내 몸, 자연과 맞서지 않고 차선을 선택하는 요령 중의 하나가 사방 벽과 지붕이 있는 카페로 피신하는 것이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카페 작업실을 애용했다고 한다.
그는 고대광실 같은 작업실을 두고 아침 8시면 카페로 출근, 창가 그의 전용석에서 12시까지 작업을 했으며
무엇보다도, 동네 사람들이나 방문객들과의 대화하기를 즐겼고, 그것으로 작업에 필요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카페는 그런 곳이다.
적당히 느껴지는 시선, 옆사람들의 대화에 슬며시 웃기도, 무릎을 치며 유레카를 외치기도,
가끔 남의 일에 답답해 훈수를 두고 싶기도 하는, 혼자인데 딱히 혼자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