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이 노래로 ‘커피’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마신 게 언제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설탕물조차 귀했던 시절, 까만 빛깔의 쓰지만 달달한 이율배반적인 맛의 커피는 먼 미지의 세계에서 온 묘약 같았다
격세지감, 이제 커피는 밥을 먹고, 공기를 마시듯,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하나, 둘 다방이 생겨나고, 다방은 카페가 되고, 도시를 점령하다시피 한 카페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카페는 이제 만남과 모임, 학문과 예술의 토론장이라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고 있다,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한옥카페, 주택개조 카페, 테라스 카페, 식물 카페 등으로 나눠지기도 하며, 목적과 용도에 따라, 디저트 카페, 브런치카페, 베이커리 카페, 스터디 카페, 북카페 , 키즈카페 등으로 분류되어, 소비자가 각자의 취향에 맞춰 선택하고 즐기는 복합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외 수면 카페, 만화카페, 드로잉 카페처럼 슬쩍 무임승차한 카페 아닌 카페도 있고, 사이버 공간 속에서도 '네이버', '다음' 카페를 필두로 일자리 카페, 동호회 카페 등 수만 개의 카페를 볼 수 있다. 우후죽순 매일매일 생기고 사라지는 카페들, 지금은 바야흐로 카페의 춘추전국시대다.
카페는 사적인 장소를 넘어서 공적인 장소로도 효과 만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진 카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공부는 머리에 쏙쏙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가 스튜디오 대신 카페를 애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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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은 외양보다 카페의 속내용이다.
메뉴판에는 없는 ‘분위기’라는 메뉴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므로 일단 들어가서 둘러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리뷰는 거의 광고성). 그다음 순서는 가방을 내려놓고 주문을 하든지, 슬그머니 나오든지.
우선 보는 것은 방음처리(건축물과 인테리어에 따라 흡음 정도가 현저히 다르므로), 좌석 간의 간격(가끔 옆좌석의 사람들과 통성명을 해야 할 정도로 붙여 놓은 자리들, 누구와 대화하는지 헷갈릴 정도). 의자, 테이블의 사이즈와 편안함, 적절한 조도, 그 외 창밖 뷰가 있으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때로는 카페 순례가 되기도 하지만 집중이 안 되는 카페에서는 뭐를 해도 안된다. 커피를 마시든, 수다를 떨든, 그림의 절반은 카페 몫이다.
‘카페는 지(자기)만 예쁘다’
어반 스케치를 시작하고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우리끼리 제일 많이 한말이다. (요즘은 외양과는 완전 다른, 반전 카페가 많아지긴 했지만.) 예뻐서 들어갔는데 , 속내용도, 바깥풍경도 별로일 때, 매번 비양(?)거리듯 하는 말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 예쁘다고 만나지는 않는다. 외모보다 마음이 예쁠 때 더 만나고 싶어 지듯이, 카페도 속살림이 편안한 곳을 더 자주 찾게 된다.
카페의 적당한 소음은 잡다한 생각을 차단시켜 오히려 집중도를 높여주고,얼핏 설핏 느껴지는 시선에서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듯한 느낌을 받는다. 알랭 드 보통이 대궐 같은 작업실을 두고 오전에는 주로 카페에서 글을 쓴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척,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온 카페는, 취향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우리는 그 취향을 공유하고 그 문화를 소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