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에서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by 한정선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봄은 온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영원할 것 같았던 겨울도, 동장군보다 무섭던 코로나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뒤꽁무니를 보이고 있다.

모처럼 쾌청한 아침, 창을 여니 온 세상이 반짝반짝 빛난다.

밤새 바람과 달빛의 샤워로 말끔해진 빌딩들, 오랜만에 드러난 먼 산들의 선명한 자태, 오가는 사람들 위로 선물인양 내리쬐는 봄햇살..

날씨 찬스! 이런 날은 만사를 제쳐두고 일단 나서고 볼 일이다.

봄기운으로 폭삭해진 대지를 뚫고 나오는 푸릇푸릇함을 곁눈질하며 아직은 듬성 듬성한 언덕을 오른다.

오래지 않아 경쟁하듯 손을 흔들어 줄 어린 잎사귀들을 상상하며, 뻗었다 굽이지고 휘어지는 숲 속 길을 걷다 보면 산티아고 순레 길이 뭐 별건가 싶어 진다.


봄은 ‘새’로 시작한다. 새 봄, 새 학기, 새 출발, 새 친구.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언제나 처음인 양 봄은 새롭다.

무언가 꺼리를 찿아 여기저기 들쑤시게 만드는 봄의 에너지로 우선 남편 사무실의 그림을 교체하기로 했다.

겨우내 사무실로 출장 보낸 그림들을 데려오고 신상 어반 스케치와 화사한 꽃그림을 걸었다.

그 여세를 몰아 내 방 서랍장 위 전시장도 그림 교대식을 하니 집안 가득 봄내음이 물씬하다.

스케치북에서 잠자고 있던 그림들이 기지개를 켜며 봄 마실을 나오고 습작같았던 그림도

액자에 넣으니 신데렐라가 드레스를 입은 듯 신수가 훤하다.


액자 속에서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캠벨 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생활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라고 했던 엔디 워홀의 말처럼

생활과 예술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생활이 예술이고, 예술이 생활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예술은 거창한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사소함을 시시함으로 바꾸지 않으려는 시도가 예술이다.

요리가, 인테리어가, 아름다운 정원이, 누군가에게는 육아가 예술이 된다.

김장을 마친 후 포개져 쌓여있는 김치통들, 베란다에서 익어가는 된장 고추장, 레시피를 뒤져가며 누군가를 위해 차린 식탁, 보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힘든 노동의 결과물은 생활과 예술의 접목이다.

아들이 아파서 오랫동안 간병을 했을 때, 친지 결혼식에서 요즘은 작품 안 하냐며 사람들이 안부 삼아 물었을 때, 대답대신 옆에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작품 여기 있잖아요'. 차마 말은 못 했지만 그때는 회복되어가는 아들이 나의 작품이었다.

그 순간,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 내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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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머릿속에 맴돌기만 하고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한 단어, 그림의 한 선 때문에 좌절하고, 때로는 의도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다른 기항지에 닿을지라도, 내 생각에 내 노동이 더해져 태어나는 짜릿한 희열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생활 속에 있다.

탄생의 계절 봄, 봄은 예술의 뮤즈, 구태여 찾아가지 않아도 햇살 조명 아래 온 세상이 봄의 전시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