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

-아름다울 수도 불편할 수도.

by 한정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동단결!

모여있는 것을 보면 이런 구호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교육의 힘이다.

초, 중, 고, 흡수력 좋은 스펀지같이 말랑 말랑한 머리에 세뇌되었던 구호들.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같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건도 모여있으면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힘은 과시와 견제가 아닌 조화로움이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고. 휘어지고 뻗어가고, 쓰임새는 같지만, 모양새는 제각각.

차별 없이 그 자체로 공존의 알리바이가 된다.

너도 예쁘고 나도 예쁘다.


또다시 칩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미세먼지, 비, 더위, 추위, 감염병까지, 이중, 삼중 잠금장치가 작동되는 요즈음,

창밖은 공상과학 영화 속 배경처럼 음산하고, 마음속에 저장해 놓은 에너지마저

바닥을 보일 때, 어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 칩거에 들어간다.

하자고 덤비면 끝이 없는 집안일을 제쳐두고,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이리저리 빈둥거리다

심심풀이로 눈앞의 의자나 하나 그리려고 했는데.. 일이 커지고 말았다.

집 안의 의자가 회의라도 있는 듯 거실로 총출동되고, 급기야 새로운 의자를 찾아 인터넷

을 뒤지고, 의자의 세계에 잠시 머물며, 아! 세상은 넓고 의자는 많구나.. 뻔한 사실에 호들갑도 떨고.

의자 그리기에 빠져 한나절이 훌쩍 갔다.

무료할 때가 가장 창의적이다.

사람들은 무료를 벗어나기 위해 평상시와 다른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낸다.

결핍은 필요를 부른다.


나는 모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예뻤던 것들도 계속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어느 순간 투명 물건이 된다.

그런 이유로, 옛날 여행지에서 사 왔던 기념품들은 잠시 선반을 차지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면 상자에 봉해져 팬트리에 자리를 잡고, 왕자를 기다리는 숲 속의 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또는 공간을 비워줘야 할 때, 세상 밖으로 나갈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며.



컵은 수집보다 효용의 핑계를 댈 수 있어 가끔 구입한다.

매일 마시는 차, 커피, 음료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않겠지만

일단 기분은 달라질 수 있다.

자그마한 소품은 그날의 풍경, 느낌, 분위기, 사람과 이어져,

까마득히 잊고 있던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해 주기도 한다.



물질도 나름의 힘을 가지고 있다.

튕겨나가지 않고, 충돌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으려는 중력과 관성.

하지만 모여있는 물질들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기, 질투, 반목,

긴장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힘은 양자역학이 아니라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에는 모든 물질이 사라지듯이, 물질은 마음의 작용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별것도 아닌 물건을 수집하고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물건은 모여있어도 시위하지 않으니까.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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