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번 여름도..
어느 해보다 기세 등등했던 여름이 끝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맹수의 이빨처럼 시퍼런 날을 세운 태양은 정수리마저 태울 듯 맹렬했지만 이제 그 빛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한낮의 열기에 아직 여름의 미련이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견딜만하다.
아름답고 쓸쓸한 가을이 코너를 돌고 있는데 이 정도 더위쯤이야.. 하는 너그러움.
올여름은 각자 할 말이 많은 여름이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 인생 최고로 더운 여름'이었지만, 어떤 전문가는 올여름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
재앙 시나리오는 최고의 납량특집이었다.
단기 기억 상실자가 된 듯 여름에는 겨울이, 겨울에는 여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성큼 와버린 계절에 매번 처음인 듯 깜짝 놀라고는 자연의 섭리에 잠시 숙연해진다.
외진 들판에 철 모르는 코스모스 구절초들이 피고, 성미 급한 귀뚜라미 한두 마리가 마이크 테스트하듯 조심스레 목청을 가다듬는 이맘때, 이미 마음은 계절을 앞서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밤새 돌아가던 에어컨 소리가 들리지 않고, 열기를 막고 냉기를 보존하기 위해 꼭꼭 닫아놓았던 창문을 활짝 연다.
창 밖을 서성거리다,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서늘한 바람 한 줌. 그 바람에 살포시 가을이 묻어있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더 반가운 손님 같은 가을.
여름이 가는 것처럼. 가을도 오는 것도 올해는 각별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