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간다. 아파트 화단, 천변의 초목들의 색깔도 깊어진다.
한때는 푸르름이었던 생명들이 색을 버리고, 부피를 줄이고, 드라이플라워처럼 마른 몸을 서로 부대낀다.
봄, 여름, 가을.. 그 화려했던 색들은 어디로 갔을까. '존 버거'의 말처럼 사라진 것들은 어딘가 숨어 있는
것일까.
겨울 땅의 기운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흙빛 보호색을 입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딘가에 색을 숨겨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색채의 유희를 잠시 접고, 흑백영화처럼, 먼 옛날 잃어버린 전설 속으로 타박타박 길을 떠나는 중인지도
모른다.
집 앞 개천은 두꺼운 얼음 코트를 입고 있다.
어린 시절, 얼음은 심심한 겨울철의 좋은 놀잇감이었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은 뽀드득거리는 얼음과자를 되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은 잘라서 칼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꽁꽁 얼어붙은 논이나 물웅덩이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썰매를 지치다 보면 어느새 짧은 겨울 해가 저물었다.
이제는 오래전 교과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풍경들과 오버랩되어, 산책길 천변은 더욱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모두가 떠나버린 옛 도시의 광장처럼.
얼음은 하나의 색이 아니다. 얼음은 다양한 무채색의 정수를 보여준다.
바다가 깊이에 따라 색을 달리하듯, 얼음도 밀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투명과 불투명이 교차되고 그라데이션 된다.
공기가 차가울수록 파래지는 겨울 하늘은 햇살을 통과하며 얼음에 색을 입힌다.
하늘빛이 스며든 얼음 사이로 얼핏 설핏 보이는 스카이 블루는 아이스 블루가 된다.
한여름 시원하게 쏟아지던 인공 폭포도 ‘얼음땡’놀이를 하다가 무정형의 물줄기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산책길에서 눈앞을 가로막은 얼음 기둥은 마치 어디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 비현실적이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사막의 신기루 같기도 하고, 하얗다 못해 시리게 푸른 얼음 속으로 들어가면 디즈니 영화 속 겨울왕국의 문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다.
겨울 속의 겨울, 겨울의 한가운데..
꽁꽁 언 개천에는 오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리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동굴 같은 수로에서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멀리 양지바른 물가를 찾아갔을까.
생존의 전제조건은 잘 숨는 것이라는 것을 오리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겨울은 사라지는 계절, 숨어 있는 계절이다.
사라지는 것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 숨어있다.
겨울은 그들의 빈자리를 탓하지 않고 따뜻하게 다독인다.
영원할 것 같은 매서운 추위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다시 이 서늘함을 소환할지 모른다.
추워서 더 따뜻했던 동굴 속 같은 겨울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