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이라는 노래가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가 있었다.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때는 피상적이었던 그 말이 코로나로 2년을 보내다 보니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하고 싶은 것은 고사하고 꼭 해야 하는 것마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액면 그대로 시간의 상실이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낭비한 시간에는 관대하지만 타의에 의해 제재되어진 시간은 억울해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코로나로 인해 잃은 것도 있지만 되찾은 것도 많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는 시간을 유턴하여 미처 정리되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게 하고, 그토록 연연해하던 여러 가지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 만남과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여행의 개념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디든 못 갈까’ 하던 어른들의 말씀은 옛말이 되었고,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먼 여행은 백팩 하나 메고 가까운 동네나 도시를 걸어 다니는 작은 여행으로 대체되었다. 그런 여유로움은 예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풀꽃이나, 숨어있던 풍경들을 보게 하고, 오며 가며 늘 보던 것도 새롭게 다가오는 마술을 부렸다. 그 외 작은 결혼식, 작은 장례식, 소모임 등 밖으로만 뻗던 우리의 행보와 생각을 안으로 돌려, 자의 반 타의 반, 생활의 미니멀화를 가져다주었다.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 요요현상은 생기겠지만 경험은 다음 시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는 도시를 여행할 때 오래된 마을이나 구도심을 먼저 먼저 찾는다.
고즈넉한 마을의 골목길을 걸으며 남의 집 담장을 기웃대기도 하고, 담장 너머 새어 나오는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소소한 재미는 '라떼는..'으로 숨어버릴지 모른다.
근래에 내가 여행한 도시들의 오래된 마을의 집, 담, 골목길들은 도시재생, 마을 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옛 모습은 사라지고 명절빔을 차려입은 듯 산뜻하게 변해있었다.
다시 찾은 인천 화수부두, 괭이부리마을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짙고 화려한 색으로 치장되어 있었고, 태백의 탄광 마을은 아파트촌으로 변해있었다. '여기가 맞는데..'지도와 동네를 번갈아 보며 의아해하는 나에게, 동네 주민은 친절하게 아직 조금 남아있는 집들을 알려주었으나 개천가의 몇몇 남은 집조차 깨끗이 칠해져 몇 년 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 혹시나 하고 둘러본 고한의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있는 작고 오래된 집들도 카페나 숙소로 바뀌어 인스타 감성의 핫 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너무 생소해서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은 느낌과 화사해진
외양만큼 사람들의 생활도 나아졌을까 하는 의구심에 마음마저 갈팡질팡 길을 잃었다.
보존과 개발은 지역 주민들의 삶과 경제, 정서 등 여러 톱니바퀴가 맞물려있는 난제일 것이다.
박물관이나 문화재가 아닌, 거주 중인 생활의 터전에서 옛 정취의 유지를 고집하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탁상행정일 수도 있지만, 꼭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의아하고 궁금한 마음에 여행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담벼락은 햇빛과 바람이 쉬어가는 곳이다.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햇살은 담을 친구 삼아 바람과 놀고, 담 아래 풀과 꽃들은 그 장난이 궁금해 쑤욱쑤욱 줄기를 밀어 올린다. 햇살과 바람의 기울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담벼락 화판은 누구의 손길도 필요 없이 그 자체가 자연의 갤러리다.
주연, 조연 구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인 그 무대에서 때로는 내 그림자도 배우가 된다.
하지만 담벼락은 이제 어느 개인의 욕망이나 취향으로 채워져 티브이 속 끊임없이 생성되는 말풍선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담장을 기웃대고, 담 밖으로 새어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숙제를 하듯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봐야 하고 생각은 그 그림에 고정된다. 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된 기분.
오래된 마을을 걸으며 빈 벽에 흔들리는 풀, 꽃의 그림자놀이를 보는 소소한 재미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텅 비어있어도 가득 찬 느낌을 주는 담벼락, 담벼락은 비어있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그 여백을 비우기도, 채우기도 한다.
그곳에 그려질 이야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주곡, 그 관람자도 지휘자도 보는 사람 각자의 몫이다.
과용하거나 오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코로나의 경고는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
작은 마을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감염병이 바꿔놓은 새로운 여행을 하면서 지워지지 않은 예전의 그림자를 다시 만난다면, 앞으로 여행은 또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코로나로 잠시 멈춘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거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