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하다가 난감~해지는 세운상가 방문기.

by 한정선

세운상가가 리뉴얼되었다는 소식이 매체에 오르내리던 2017년 가을을 기점으로, 어쩌다 보니 매년 한 번씩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첫 방문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였고, 그 후 그림을 그리러 가기도, 또는 접근성이 좋아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카페가 들어서고,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이 생기는 등, 해마다 상가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갈 때마다 드는 변함없는 내 생각은 두 가지, ‘신통방통’과 ‘난감’이다.

처음에는 ‘신통방통~’하다가 결국 ‘난감하네~’로 마무리되는 양가감정.. 나만 그런 것일까.


복도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는 가게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옛것과 새것, 현재와 과거가 공생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그곳이 터전인 장인들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고, 근래에 이주한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콘텐츠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서로의 작업방식을 공유하는 시스템. 그 시너지 효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될 것 같은 에너지가 상가 가득 넘친다. 원주민은 텃세 부리지 않고, 이주민은 구시대적이라고 배척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을이나 일터, 어느 곳에서나 아름답다.

이 부분에서 ‘신통방통’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난감하네’로 상황이 돌변한다.

그 느낌은 상가 2층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에서 시작되어 9층 세운 전망대로 연결된다.

웬만한 운동장 크기의 전망대 그 자체는, 대청마루 같은 테크, 벤치, 텃밭 등으로 입주민과 서울시민의 옥상공원 역할에 손색이 없다. 게다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서울시의 전경은 그중의 백미. 정문을 마주하고 있는 인왕산과 종묘, 이름을 알만한 광화문과 종로의 빌딩들, 동대문 시장과 멀리 남산, 빌딩 숲과 녹색 숲이 교차되는 풍경에 눈과 마음을 뺏긴다.

그러나 경치를 즐기며 아크릴 난간을 돌다 눈을 아래로 돌리면, 아뿔싸.. 한켠에서 2층에서의 풍경이 재현된다. 돌멩이 하나에도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녹슨 양철지붕, 슬레이트 지붕들이 겹쳐져 빛도 바람도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이는, 거대한 빌딩 아래 숨어있는 서울의 민 낯,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한 복판에서 이토록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이 사실 같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개발에 시위라도 하듯, 요지부동인 오래된 집들은 개발과 보존, 공존과 공생, 보상이라는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얽혀있겠지만, 또한 그 이유로 청년들이 모이고, 창업을 구상하고, 합지로, 뉴 레트로라는 명소로 SNS의 성지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전면철거 재개발과 보존형 도시재생, 서울시가 풀어야 할 난제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내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운상가 옥상 전망대에서 본 풍경


모든 것은 흘러간다. 때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때로는 초보운전자처럼 느린 속도로.

세운상가도, 을지로도 흘러간다.

공간과 함께 시간을 품은 오래된 집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소멸과 생성, 변화를 피할 수는 없는 법,

‘잘 흘러가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세운상가 주변, 여기저기 유달리 많은 크레인을 보면서 내년에는 '난감하네' 대신 '신통방통'만 외치고 다닐 기대를 해본다. 그나저나 크레인도 유행에 편승하듯 민트색.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민트색의 향연에 잠시 굉음이 멈춘듯한 플라세보 효과. 공사장도 뉴트로다.

세운상가 2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낡고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위에 에어컨 실외기가 올려져 있는 모습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 집들의 지붕 위 노란 물탱크가 겹쳐진다.

산아래 언덕배기 우리 집의 창문을 열면 멀리 보이는 부두를 향해 집들과 넓고 좁은 길들이 이어지고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지붕 위의 노란 물통으로 창 밖 세상은 사철 내내 노랑 땡땡이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상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언덕 위 집들은 수돗물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 시간이 밤이나 새벽에 아다리(?) 되면,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의 물을 비축하기 위해 온 식구들이 자다가 일어나 물을 받아야 했다.

식구는 많고 오직 손빨래만 가능했던 시절, 마당에는 크고 작은 대야, 바께츠, 설거지통까지 총동원된 빈 통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이면 빠지지 않던 그림 그리기 숙제에서, 창문 밖 풍경은 나의 단골 소재였는데, 거리에 따라 크기도 작기도 했던 수많은 노란 물탱크 또한 엄연한 주연이었다.

흐르는 시간 따라 지붕 위에는 물탱크 대신 에어컨 실외기가 자리 잡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옛날 우리 집 창문 밖 풍경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세운상가 2층에서 바라본 지붕 위 에어컨 실외기 모습에 어린 시절 창문 밖 지붕 위의 노란 물통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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