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지명은 한자로 되어있고, 그 수도 막대해서 일일이 그 뜻을 헤아리기 힘들지만, 가끔 재미있는 지명을 보면 그 유래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특이한 지명도 있다.
그런 면에서 해방촌은 그 이름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해방’은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게도(최소한 나에게는) 최고의 가치, 궁극의 목표니까.
이름에서 이미 유래와 역사를 짐작할 수 있듯이, 해방촌은 해방을 전후로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거주하면서 생긴 동네다.
그 시절에는 산비탈을 파내어 지은 무허가 판자촌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대신, 그 이후에 지어진 언덕배기 오래된 집들과 꾸불꾸불한 골목길, 고색창연한 신흥시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남산과 서울타워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경계 없이 공존하고, 재미와 의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 해방촌은 그 이름처럼 독립적이고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가다 숨이 턱에 찰 무렵 만나게 되는 신흥시장은 해방촌 역사의 산증인이다. 시장이기도, 광장이기도 했을 그곳은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지면서 박물관처럼 변해갔지만. 얼마 전 도시재생사업의 시작으로 공방과 카페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해방촌, 신흥시장. 분명 다른 말인데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같은 말처럼 들린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형제까지는 아니지만 사촌 정도?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어디선가 으쌰 으쌰 하는 함성이 들려올 것 같다.
옛 버전으로는 잘 살아보세, 요즘 말로는 리셋이다.
그 당시 반짝반짝한 신상으로 가득 찼을 가게들은 지금은 간판만 남아 '엄마 어렸을 때' 전시장같은 모습이지만 이곳은 일부러 꾸민 곳이 아닌 실제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름과 동떨어진, 아니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시장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게 무슨 ‘신흥’이냐고? 이름은 ‘고유명사’니까 따질 수 없다.
‘간난이’가 할머니가 되어도 ‘간난이’인 것처럼 신흥시장도 그때나 지금이나 신흥시장이다.
공간과 함께 켜켜이 다른 시간을 품은 시장은 지금 '환경개선사업'으로 어수선하다.
옛것과 새것이 사이좋게 어우러질 모습, ‘신흥시장 시즌 2’가 궁금해진다.
해방촌에는 남산타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루프탑 카페들이 많다.
그러나 굳이 루프탑을 찾지 않아도 남산타워는 해방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밤길을 걷다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 둥실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 화들짝 놀라듯, 해방촌 언덕을 오르내리다 고개를 들면, 눈앞을 가로막는 남산타워에 매번 놀라곤 한다.
종로, 을지로, 남대문.. 서울시내에서, 멀리서 손가락만 하게 보이던 남산타워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에서 하늘을 가릴 듯 우뚝 서있는 모습은 마치 거인국에 온 듯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거리도, 집도, 사람들도, 익숙한데 나지막한 산 위 커다란 탑은 낯설어, 먼 곳으로 여행 온 듯 잠시 착각에 빠진다. 어차피 여행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 집안, 집 밖, 어디서든 낯선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이 곧 여행이다.
파리를 여행할 때 에펠탑을 찾는 것처럼, 서울여행에서 남산타워를 찾아가는 것은 똑같은 여행의 방식이다.
드물게는, 여행의 기분은 느끼면서 숙소 대신 집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가끔 여행이 길어지거나 힘들 때,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인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으니까.
교회의 첨탑, 등대, 큰 다리의 교각처럼 높고, 길고, 큰 것은 위풍당당, 압도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