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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ul 21. 2023

"그딴 걸 왜 해!!"

   

마트 매대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김밥재료에 눈이 갔다. 아직도 집에서 김밥을 싸는구나. 예전에 나도 참 많이 쌌는데.. 별스런(?) 향수에 끌려 계획에 없던 재료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천덕꾸러기가 되어 냉동실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구정 선물 김도 처치할 겸, 이미 만들어진 재료 몇 개만 있으면 되겠거니.. 그런 단순한 생각과 함께 한 달여의 유통기한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약이었던 유통기한이 점차 독이 되어갈 무렵, 때마침 남편과 아들들의  사무실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남편과 두 아들은 같은 건물에서 근무와 거주, 배달 한 번에 일타삼피, 쓰리쿠션). 전날부터 ‘김밥 싸갈게~’ 일단 호언장담해 놓고, 다음날 일찌감치 판을 벌였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 이어서일까, 김밥은 내 생각처럼 호락호락 되지 않았으니, 준비된 단무지, 우엉, 어묵 외, 당근, 계란, 오이, 햄을 썰고 볶고, 눅진한 냉동실 김 대신 김밥용 김을 동네 마트로 다시 사러 가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게다가 수순인 듯 김밥은 터지고, 터진 김밥을 메고, 싱크대, 식탁 할 것 없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부엌에 내 마음마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환청처럼 계속 들리는 말 “그딴 걸 왜 해!!”  

    

“그딴 걸 왜 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우연히 먹거리 얘기가 나오고, 된장, 고추장, 간장을 직접 담가 먹는다는 내 말에 친구가 한 말이다. 이 절(일절 다음 이 절)은 “며느리가 좋아할 거 같아?” 한 대 맞은 듯 멍~했지만 그 순간은 감을 못 잡고 즐겁게 놀다 집에 와서 저녁을 하는데 속이 체한 듯 계속 뭔가 걸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생각해 보니 친구의 말. 장을 담근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하다 ‘는 반응이었기에 야단맞는 것은 세상 억울한 일, 게다가 없는 며느리는 왜 나와? 이래저래 밥 하다 말고 친구에게 톡을 했다. (서운했던 말이나 행동은 그 자리에서 풀지 않으면 결국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는다는 경험치,) 내가 듣고 싶은 말은 ’ 마음 상했겠네 미안해 ‘였는데, 친구는 내가 힘들까 봐 그랬다고 얼버무렸다. 불규칙한 식사와 맵고 짠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는 친구와 잘 챙겨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완전 반대지만 서로의 식습관에 터치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오래 보는 비결 중 하나다.  충. 조. 판. 단은 의사나 과학자나 선생님의 생업, 그 외에는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는 지론과 함께.


두 시간의 대장정 끝에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 완료.

아들들은 엄마표인지 식당표인지  관심도 없고, 남편만이 감격한 표정으로 “오랜만에 당신 김밥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 칭찬에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이게 마지막이야.” (기대의 싹은 단번에 잘라야 한다).


‘그딴 걸 왜 해!! ” 친구의 비난의 말이 명언처럼 들리는 날,

“그니까, 그딴 걸 왜 했을까??” ‘현모양처 코스프레’는 이제 졸업할 때도 됐건만 야릇한 향수에 끌려 고생만 했다는 자괴감이 들 즈음 쌓인 김밥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에 좋았더라’ 하느님의 말씀은 역시 진리다. 점심, 저녁을 한 번에 해결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안 해야 할 그딴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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