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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Sep 20. 2023

어반스케치라는 세계.

    

어반스케치는 화가이자 기자인 가브리엘 캄파나리오에 의해 2007년에 만들어진 미술운동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나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거나, 혹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어반스케치라는 용어자체가 생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반스케치는 생긴 지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은 미술계의 신생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하 어반스케치는 어반으로). 물론 알타미라 동굴벽화만큼 오래된 그림의 역사에서 본다면 어반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유화, 수채화, 한국화처럼 공식적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극히 근래의 일, 그 짧은 시간에 전 세계 300여 도시에 공식챕터가 생기고 그보다 더 많은 비공식챕터 수까지 감안한다면 어반의 붐이 가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체 어반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필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어반에 끌렸을까?

어반이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지 어느덧 10년, 어느새 몸집을 불리고 있는 그 세계를 한 번쯤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로부터 시작된 궁금증을 한 올 한 올 풀어가는 과정이다.

‘가장 개별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속설에 기대어 행여 누군가의 공감을 받는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슬슬 어반이 궁금해진다면 일단 어반스케치 manifesto(규약)이 도움을 줄 수 있다.

1. 우리는 실내외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다.

2. 우리의 드로잉은 여행지나 살고있는 장소,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다.

3.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 우리가 본 장면을 진실하게 그린다.

5. 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6.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7. 우리는 온라인에서 그림을 공유한다.

8. 우리는 한 번에 한 장씩 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매력적인 문구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호매김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면 그냥 무시하고 그리면 된다, 사실 내가 어반을 시작할 때는 어반이 뭔지, 하물며 규약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림 한 두 장 그리면서 친구들과 차 마시고 수다 떨고, 게다가 혼자서는 찾지 않을 명소 탐방까지. 일차적 목적은 그림이었지만 그 외 부차적인 매뉴얼도 빼놓을 수 없는 쏠쏠한 재미였다. (본책도 재밌지만 부록부터 먼저 보는 마음?) 그 후 어반이 활성화되면서 규약이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스케쳐들이 매번 그 항목을 생각하며 그리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십계명을 다 지키며 살 수 없듯이 규약은 단체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지침서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1번은 지켜져야 한다. 어반의 핵심은 그 자리에서 보고 그리는, ‘현장성’이기 때문이다.

사진 작업이나 상상력을 토대로 하는 여타의 실내 작업과의 차별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 이유로 sns상에서, 그림 사진보다 때로는 인증샷이 먼저 올라오기도 한다. 8개의 규약 중 속에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냥 보이는 세상과 그리면서 보는 세상은 확연히 다르다.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과 사물들은 눈과 손을 통해 마음에 들어오면서 각자의 역량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편집되고 재해석된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다’라는 보편성은 물론, 때로는 세상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안따까움이 그림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음의 눈은 내 안의 세계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공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규약들은 대부분 스케쳐스들의 그리는 과정에 녹아있다. 그러므로 어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규약을 준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도 어반을 작업을 위한 밑그림정도나 심심풀이 낙서정도의 가벼운 그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그려보면 일반인은 물론 내로라하는 화가조차 생각처럼 쉽지 않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수채화를 십여 년간 한 나도, 오랜 시간 유화를 한 친구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젤 어럽다'이다. 어반은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2D에서 3D로, 실내 작업과 다른 시각적차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야외작업은 비, 바람, 햇빛, 소음, 주변환경등 자연과의 싸움을 넘어서는(자연과 감히 싸울 수는 없다.)극복과 공존의 밀당을 해야하므로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다. 게다가 사방팔방 파노라마로 보이는 사물을 다 그릴 수는 없는 일, 원 픽과, 그럴싸한 배치, 구도는 오랜 시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어반이 가볍다는 것은 편견, 작가의 성향이 있을 뿐, 장르에 따른 가볍고 무거움은 없다. 가볍고 무거움으로 그림의 퀄리티를 논하는 것은 구시대적 유물, 어반계에도 고호, 바스키야, 피카소가 있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어반의 장점은 수채화, 유화와 달리 정해진 기법이나 룰이 없다는 것과 다양한 재료와 소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연필 하나로도 언제 어디서나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작용에 비례하는 부작용처럼 정해진 재료나 소재가 없다는  장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개별적이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면을 기웃거릴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정면돌파, '아무튼 그림'이다. 사실 물리적 성격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어반의 정신이다. 어반의 정신은 ‘자유’, 하지만 이것 또한 개인의 몫, 하다 보면 의미도, 재미도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온다.

    

그림에 정답이 없듯이 어반을 잘 그리는 ‘방법’은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반 수업, 어반을 배우는 것은, 비유를 하자면 독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듯이 내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면 된다. 여기서 남의 그림과의 비교는 금물, 비극의 시작점이다.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다니며 수업(대부분 실내수업)을 받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빨리 커라고 많이 먹이는 것과 같다. 꼭 수업이 필요하다면 수채화나 펜화등, 본인이 좋아하는 재료의 성격을 배워 어반에 접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될 것이다.

흔히  배우는 ‘기법’(스킬)은 그림의 감미료에 불과하며, 중독성이 있어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기법은 한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리다 보면 저절로  나만의 기법이 생긴다. 구태여 남의 기법으로 남의 그림을 모사 할 필요가 있을까?

내 기법으로 내 그림을 그리자.

 

이 글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법’에 관한 것이 아닌, 재미있는 그림, 느낌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대략적 방법론이다. 이름하여 ‘그림과 놀기’ ‘그림과 연애하기’.

‘재미’는 지속가능성의 필요불가결 요소, 재미가 있으면 의지도, 의미도 저절로 따라온다.

어반의 경험에 기대어 쓴 글이지만 굳이 어반에만 국한시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림’이라는 교집합 안에서 그림은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비단 그림뿐만이 아니라  시, 소설, 음악, 무용, 모든 작법론에 대입할수 있는 이유는 모든 창작물은  그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프롤로그인지 에필로그인지 모를 사설이 길어졌다.

이제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기 위한 방법 속으로 풍덩! 또 다른 사설이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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