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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Sep 20. 2024

지극히 사적인 추석(명절) 사용법.


‘추석 졸업했어요’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이번 추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사실 별스럽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의미'를 앞세워 추석의 악몽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기  위해서다. 사건의 시작은 역시나 추석 가족 모임이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둘째 아들의 가족 개념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흔히 말하는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우리 가족에게 금기어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반증 학설을 한 시간 이상 들어야 하고 반박을 하면 거기에 맞춰 또 다른 학설이 이어지니, 그냥 처음부터 그런 애매모호한 진리는 꺼내지 않는 게 상수다. 그래도 명절에 집에 와서 밥은 먹었는데 이번엔 각자 지내자는 톡이 왔다. 바빠서 못 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가족 모임이 의미가 없어서 안 온다는 아들의 말에 덜컥 걱정이 앞서. 이래저래 회유를 해 봤지만 요지 부동, 나는 어느 정도 포기를 했는데 복병은 남편이다. 계속 나에게 어떻게 해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결국 나의 재시도로 잠깐 들르겠다는 아들의 낭보(?)를 받고서야 남편은 화색이 돌고 덩달아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부터였다.

즉, 문제는 아들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었다. 아들의 맘이 바뀌어 올 수도 있고 또 안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결국 오라고 사정한 모양새가 되었다. 어쨌든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이틀 정도 내 한 몸 불사르면 남들처럼 추석 저녁을 보내려니,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모토를 외치며 흩어지는 에너지를 모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큰아들과 같이 온 둘째는 현관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화가 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탐정들이 사건 이전의 행적을 추적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필름을 되돌리는 것은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임을 말해준다. (요즘은 CCTV가 해결하지만). 아들 또한 장기 일본 여행을 앞두고 환율상승 문제와 여자 친구와의 갈등등,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별스럽지 않은 형의 한마디가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이유 없이 화를 내다 딱 10분, 밥만 먹고 갔다. 살벌함, 황당함, 허탈함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 “그래도 밥은 먹고 갔잖아?” (밥으로 위안을 삼는 이유는 뒷 장에서 알 수 있다).

그래, 안 온 거보다 낫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과정은 행복했으니까.

전쟁과 평화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성격이 정반대인 이란성쌍둥이.

     

돌이켜보니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추석이니까 가족이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몸과 마음)이 안되면 다음에 볼 수도 있는데 왜 그리 안달복달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경우, 그러니까 우리 때에도 한두 번 명절에 못 간 적이 있었다. 남편 또한 아들 못지않은  한 성격 (비교가 거꾸로 된 듯), 가는 도중 차가 막힌다고 뉴턴해서 집에 온 적도 있고 먼저 온 조카들이 나와서 인사하지 않는다고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고 되돌아온 적도 있다. 몇 시간 명절 정체로 배고픈 아들들과 나,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황당함은 역시 각자의 몫. 그때는 내 생각만 했는데 이제야 어머님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이미 아들에게 숙달된 어머니는 별일 아닌 듯 말씀이 없었지만 마음속은 얼마나 끓고 있었을까. 그 맘이 내 맘,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들 교육 잘못 시켰다고 원망한 벌을 지금 내가 받고 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래도 우리 아들은 밥은 먹고 갔네요ㅎㅎ. (그것도 자랑이라고).

놀라움을 넘어서 끔찍한 DNA의 세계에 추석 DNA도 있다.

          

추석은 사건, 사고의 매개체, 요즘 용어로 소셜 네트워크다. 물리적, 가상적 공간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있는 터주대감, 시기, 반목, 질투는 추석이라고, 가족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추석을 숙주 삼아 가족 간 갈등과 화합은 더 왕성해진다.

비록 이번 추석은 실패했지만 올바른 명절 사용법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가족의 개념을 다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예전의 추석을 고집할 수는 없다고. 한, 두 시간의 식사를 위해 이틀 동안 영혼을 불태우는 것은 자기 학대일 뿐, 감사와 사랑과 무관하다고.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며, 내년에는 자신 있게 ‘추석 졸업했어요’를 외칠 생각이다.

#추석 휴무

#예약은 받지 않습니다

#주인장이 여행 중입니다

해시태그 완성. 생각만으로 흐뭇한 내년 추석.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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