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테제: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삶을 구성한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삶을 구성한다.
단, 역사와 사회가 내세운 조건 안에서.
공교롭게도 앞서 쓴 글에 대한 답 같기도 하다. 지금-여기의 삶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정해진 것일까, 하는 우문에 대한 답. 그러면서 한편으로 ‘배태되어 있다’ ‘조건지어져 있다’ 하는 말에 누군가는 끄덕이고 누군가는 발끈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개인의 특성(이 또한 환경과의 무수한 상호작용으로 진행되는 것이지만)과 환경이 끊임없이 쌓아올리는 한 인간의 삶이란.
영화 <디 아워스>는 인간이라는 행위 주체(Agency)가 자신이 '던져진'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삶을 조형하는지 잘 보여준다. 1940년대 서섹스에서, 1950년대 LA에서, 그리고 2000년대 뉴욕에서.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2020년대 서울도 떠올리게 된다.
가령, 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이 자신에게 주는 무게를 재어보며,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축하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 이 시기에 자신의 작품에 상을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느냐며. 그리고 공교롭게 때를 맞춰 북한이 러시아 군에 합류하며 '실제 인간'이라는 형태로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을 더욱 신체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일련의 사건을 목도하며 계속해서 버지니아 울프의 한 에세이가 떠올랐는데, 런던 시내에서 감각하는 포탄 소리가 현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무참 속에 예민하게 벼린 감수성(이성과 감성)을 글로써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비탄.
영화는 세상의 폭력과 무심이 행위 주체로서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조형하는지 잘 보여준다. 앞선 문단에서는 인간을 조형의 주체로 놓았는데, 몇 문장을 옮겨 가며 그럴 수는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던져진 세계가 그 인간의 삶을 조형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버지니아에서 로라, 클라리사로 세 시간대가 옮겨갈수록 나선형처럼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선대의 꿈은 후대에서 현실이 된다. (이런 변형, 변신은 <올란도>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것은 여러 행위 주체들이 조형해 가는 세계의 모습 덕분일 것이다. 결국, 개인의 삶과 세계의 삶은 끊임없이 주체의 자리를 탈환하며,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변모해 간다.
변하지 않는 것은 시인의 죽음'이다. 예민하게 벼린 감수성을 글 말고는 표현할 방도가 없는 그들은 죽음으로 걸어간다, 아니, 던져진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 살아 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주려고 이들은 자신들을 움직이는 작가에 의해 희생 제물이 된다.
세 번째 테제를 머릿속에 품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 안에서 맴돌고 만다. 역사적, 사회적 상황 안에 조건 지어진 선택과 행동, 그 선택과 행동을 지지하는 불변의 가치가 있다면, 있으면 좀 더 수월하겠다 하는. 하지만 그런 가치를 품고 있는 사람들, 시인들은 살아 남기가 쉽지 않겠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