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Seok Kim Sep 20. 2021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감상평

이유가 필요해질 때 꽃이 시드는 게 아닐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We Made a Flower Bouquet

花束みたいな恋をした



오랜만에 본 우리가 좋아하던 그때 그 감성의 일본 영화

"좋아할 때는 별다른 이유가 없이 시작했는데 헤어질 때는 왜 이유를 찾게 되는 걸까?"

"시작할 때는 그냥 감정이 중요한데 관계를 끝낼 때는 자꾸 안되는 이유들에만 집중하게 되는걸까?"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는 건 시놉시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감상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

200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 문화는 분명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연애 장르로 연애시대, 냉정과 열정 사이 등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서 일본 작품들은 존재감이 있었다. (연애 장르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이 떠오른다)


그 시절을 10대와 20대 초반으로서 지나온 내 마음속에는 그런 감성의 공간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잊고 지내던 방문을 열어본 느낌이다.


음악도 그렇다. 그 시절 즐겨 듣던 말랑말랑한 제이 락의 요즘 버전을 오랜만에 들을 수 있다. 둘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부터 OST들은 시티팝스러운 일본 팝 느낌이 잘 담겨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프리템포도 떠오르고.


#2

이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영화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많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저 기분 좋은 여운을 느낄 목적이라면 추천한다.


 영화의 플롯은 전형적이고 둘의 사랑도 그냥 "보통의 연애"다. 두 남녀가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물 흐르듯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들에 더 눈이 가고 멀어지고 싸우기도 하다가 점점 더 서로 조심하게 되다가 그러다가 끝내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뻔한 사랑으로 가는 프로세스와 그 이후의 과정들을 감정이 과잉되지 않게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이 영화의 좋은 점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전형적이라 클리셰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딱 일본 감성이다.


 이 감성의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요소는 역시나 미장센이다. 배우들의 의상, 배경, 인테리어 전반에 흐르는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스러운 장면들과 구도들은 취향 저격이었다. 해외 여행을 못 가는 요즘 대리 만족 하는 기분이랄까.


일본의 사회적 흐름이 우리나라보다는 느려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그때 그 감성들을 느끼게 하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히 아련하다.

(신축 아파트 풍경이 아닌 낮은 건물들 그리고 유선 이어폰을 나눠듣는 장면. 2020년에 유선 이어폰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3

 영화의 모든 과정은 헤어짐의 그 순간을 위한 빌드업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헤어짐의 순간에서야 찾아오는 좋았던 기억”들과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지만 사람이니까 하게 되는 그런 상상”들을 위한 영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라라랜드", "건축학개론", "너의 결혼식",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등등을 떠오르게 한다. (라라랜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꿈에 대한 이야기지만)

하지만 절정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마치 감독이 과정을 보여주는 데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것처럼 작위적으로 풀어가는 것은 이 영화의 평점을 깎아먹는다. 라라랜드가 위대한 영화일 수 있는 것은 마지막 환상을 보여주는 방식 때문이지 않겠는가.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의 연기가 겨우겨우 고군분투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어찌어찌 성공하지만 하이라이트가 결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마치 투자자든 누구든 꼰대하나가 이런 장면에는 이런게 들어가면 좋겠군 에헴”이라고 말했고 이를 아무도 말리지 못해 들어간 옥의 티같다.


#4

 연인이 헤어지는 때는 역시나 진솔하게 대화를 하지 못할 때인 것 같다. 연애가 건강하려면 상대를 헷갈리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빈틈을 채우고 싶어하고, 불행에 예민하기 때문에 균열은 주로 불안감이 메우게 된다.

 관계의 균열은 시간이 흐르고 환희의 감정이 식어가면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헷갈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가 충분히 많아야 한다.


#5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모두 선택의 결과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겪어낸 사람은 그 이전과 다른 사람이다. 2020년의 무기와 키누는 2015년의 무기와 키누와 다른 사람이다. 헤어졌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깊은 어딘가에 비가역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냥 친구 관계도 흔적이 남고 그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건데 연인 관계는 오죽 큰 영향이겠는가. 상처가 지나가고 난 뒤에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만 서로의 인생에 그런 사이였다는 것 그게 어디인가.


#6

결혼이라는 강력한 제도로 묶이지 않은 연애 관계는 연약하다. 관계를 지키는 것보다 다른 것들이 중요해지는, 대화를 포기하게 끝이 찾아온 순간이다. 


연애의 시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처럼, 다시 말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게 최고인 것처럼 관계의 유지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관계는 항상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서로 자연스럽게 노력할 수 있는 사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7

 그런 점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유지 보수에 대한 서약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선언같은 거 말이다. 연애는 좋은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고 결혼은 나쁜 순간들까지 함께 하는 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오래 만난 연인들이 결혼을 택하는 이유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해나가는게 필요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것도, 진행하는 것도 기존의 연인 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니까 일상이 새롭고 신선할 수 밖에 없다.


일단 결혼을 하면 서로의 생각보다 다른 생활 습관을 발견하고, 서로의 가족들을 가족으로 받아드리고, 또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는 과정을 정신없이 겪게 되니 둘의 관계에 대해서만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집중 못하게 된다)


 오랜 연애를 거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내가 봤을 때는 그게 무기가 말한 결혼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보궐 선거 결과를 보고 든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