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베스트"
팀원이 남긴 업무 진행 방향에 대해 동의하면서 무심코 나도 모르게 이런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이 표현을 자주 쓰시던 분이 떠올라 새삼 웃음이 났다. 아, 정말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란.
보통 직장 생활에서 만난 업무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사수"라고 부른다. 좁게는 바로 위의 선배 사원을 가르키는 경우가 많지만, 업무와 태도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사수라는 범위는 얼마든지 넓게 볼 수 있다. 내게는 이 분에게 직장 생활에서 갖게 되는 태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연차/나이가 차이가 많이 나지만 충분히 사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나온 후부터는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ㅇㅇ형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신입 사원이었고, 그는 막 과장으로 승진한 마케팅 팀의 W/G장이었다. 즉 직속 상관이었다. 우리 그룹에는 그외에도 선배 사원, 경력직 대리가 있었으니 그는 4명의 그룹을 책임지는 리더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을 배우면서 스킬적인 면도 배웠지만 태도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한번은 내가 다른 층에 있는 다른 팀의 과장님께 메신저를 보내서 무언가를 문의한 적이 있다. 그걸보고 그는 나에게 메신저를 보내지말고,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있는데 가서 얼굴보고 말하라고 했다. 요즘 MZ, MZ하지만 그때 당시로는 최신형 요즘애들이었던 나는 속으로 "굳이 왜 가서 얘기를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거야. 얼굴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부탁하는 거랑, 생판 모르는 사람이 메신저로 부탁하는 거랑 다른거야"
그 말을 듣고도 업무 요청이 맞는 요청이면 들어주는거고, 안되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거지 전달 방식이 무슨 의미가 있나는 생각을 했지만 굉장히 수직적이던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안된 나는 더는 군말 안하고 가서 인사를 하고, 업무를 요청했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사회 생활을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와 일을 하면서 그 말의 뜻을 더 잘 알게되었다. 그는 업무 협조를 잘 얻는 사람이었고 그를 통해 일을 쉽게 쉽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밑에 있던 덕분에 나 역시 일을 하기 수월했다. 그와는 대조되게 굉장히 논리적이고, 공격적인 업무 태도를 지닌 분도 근처에 있었는데 그 분도 업무적 목표를 이루는 것은 동일했지만 정신적으로 소모되는게 심해보였다. 관찰해보니 사람들은 기계가 아니라 굉장히 감정적인 동물이라서 맞는 말이라고 해서 더 잘 움직이지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아도 감정적으로 받아드리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려고한다. 일하면서 보니 항상 논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일을 쉽게 쉽게 하기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것도 분명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가 상대방에게 영업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저 편안한 분위기로 진솔하게 얘기하고 진지하게 일했다. 그는 또한 대인이었다. 누구를 험담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화를 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힘들어보이거나 짜증을 종종 내기는 했으나 이성을 잃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다양한 모험을 했고, 어느덧 나도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일하면서 여전히 그에게 배운 태도를 중요시해서 이왕이면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하고, 무엇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라는 걸 늘 되새긴다. 그러나 그만큼 대인은 아니라 사람들에게 포용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사회 생활의 시작 몇 년간을 그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나는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와 함께하는 구성원들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보고싶습니다. ㅇㅇ형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