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보고
영화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기억과 감정들을 한가득 담아 보여준다.
슬프고도 아름답고 부끄러우면서도 고귀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
연두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드넓은 자연의 풍경은 내 어린시절 기억 속 시골의 풀숲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 먼 미국까지 와서 도시가 아닌 황무지 시골을 찾아온 이들의 사연을 말해주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피로와 절망, 새 삶에 대한 집념 등은 아소칸의 풍경이 되어 내 심장에 그대로 파고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중간 계속 등장하는 맑고 푸른 하늘, 들판의 풀잎에 반사되는 햇빛의 장면은 아름다울수록 가슴아프다.
이들처럼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도 어떻게든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려고 했던 우리네의 모든 부모들..
그리고 이들의 말다툼을 보며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때는 큰 상처였지만 엄마가 된 지금은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지난 날들.
갑자기 어느날 큰아빠네서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어 나랑 방을 같이 써야했던 할머니...할머니에게 늘상 퉁명스럽게 대했던 사춘기의 나.. 잘못했던 것들만 자꾸 생각나고..
얽히고 설킨 기억과 감정들이 나를 에워싸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장례식장에서 우는 이들의 설움은 간 사람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자기 설움이라고 하더니,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서 힘들었다.
미나리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몸을 내어주며 잘 자라고 있고, 그에 깃든 우리들은 오늘도 산다.
절망할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 산다.
그리고 때로는, 이유 모르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데이빗 심장의 구멍이 자연스레 작아지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