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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Nov 19. 2018

내가 준 상처

눈치보며 학원 숙제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학창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엄격하기로 소문난 악명높은 여선생님을 '마귀할멈'이라고 적었던 글을 들켜서 곤혹을 치렀던 기억에 대한 것이다. 자기의 글 때문에 그 선생님이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

  누구나 학교다닐 때 있었던 선생님과의 관계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한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정말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1년이 끝나고, '교사의 교수법에 대한 의견'을 적으라고 하셨는데, 교사 평가제가 없던 그 시절 그런 '설문조사'를 스스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앞서나가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 선생님은 수업 전 도덕교과서를 읽고 요약해오는 숙제를 항상 내셨다. 일종의 예습, 그리고 글을 읽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내가 살던 지역에는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다. 인문계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물론 나는 떨어질 위험의 성적을 가진 그룹은 아니었는데도, 알 수없는 불안감과 선생님들의 채찍질에 마치 고3이 된 기분으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여느 입시와 같이 비중이 크고 점수 편차가 큰 영어, 수학에 당연히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했고, 그런 바쁜 마음 속에 매 시간 해야하는 도덕숙제는 나에게 제일 귀찮은 숙제였던 것 같다. 사실은 그냥 숙제가 싫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의견란에 '별 가치가 있어보이지 않는, 주요 과목도 아닌 도덕교과서의 글을 굳이 이렇게 요약하며 되새겨야 하는가?' 정도의 문구를 적었던 것 같다.

  약 일주일 뒤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날 부르셨다. 나는 왜 부르시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글에 상처받으셨다고 하셨다. 내가 쓴 문구가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 같았다고 하셨다. 아마도 본인이 가르치는 '도덕'이라는 교과를 내가 '주요 과목도 아니면서'등으로 규정지었던 것에 큰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내가 가볍게 생각하고 쓴 글이 그렇게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자유롭게 의견을 쓰라고 하고 그 것에 대해 다시 학생을 불러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몇 번을 고민하셨다고 했다.


  지금 나는 자유학기제 수업을 하면서 사실 똑같이 당하고 있다.

  몇몇 학생들은 내가 준 학습지에 성의없는 내용의 글을 채우고 (안하면 뭐라고 하니 할 수없이 하긴 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며 수학문제를 푼다. 그 학생들에게서 과거의 나를 본다.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는, 누구보다도 학업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는 애매한 성적의 학생들이다.

  자유학기제는 시험조차 없다. 공부할 당위성이 없으니 학원 숙제가 급한 몇몇 아이들의 행동은 당연하다. 내가 고마운 점은 그나마 교사의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순수했던 그 선생님처럼 마음을 찌르는 가슴아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학생들을 충분히 유혹하지 못하는 내 교수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쨋거나 변하지 않는 우리의 입시가 지금도 내가 지난날 만들었던 기억 속의 상처를 더 크게 후비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있는 기억. 누구나 들어본 '주요 과목'이라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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