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으로 드러내는 내 취향
얼마 전 컴백한 JYP의 아이돌 그룹 엔믹스의 앨범을 선물 받은 셀럽들의 인증샷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유, 선미, 웬디, 안유진 등 엔믹스의 선배 가수들은 엔믹스의 앨범 선물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인증했다. 단순한 앨범 인증샷처럼 보였지만, 앨범의 독특한 형태가 특히 주목받았다. 이는 단순히 CD가 아닌, MP3 플레이어에 음원이 담긴 형태의 앨범이었고, 팬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4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인 에스파 역시 엔믹스와 비슷한 형태의 앨범을 제작한 바 있다. 올해 상반기에 컴백한 에스파는 앨범을 CD플레이어에 담은 한정판으로 발매해 화제를 모았다. CD플레이어를 함께 구매할 수 있는 이 한정판 앨범은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형태 덕분에 팬들의 관심을 끌며 1시간 만에 매진됐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1020대가 주 소비층인 4세대 아이돌이 왜 이렇게 불편한 형태의 앨범을 제작할까? 이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준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디지털이나 영상으로 1분 안에 감상할 수 있는 음원이지만, 물리적인 매체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며 '불편하게' 감상하는 것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힙'한 행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요즘 힙하다고 여겨지고 유행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들이다. 스마트폰 대신 필름카메라, 블루투스 이어폰 대신 줄 이어폰, 검색 대신 전시회나 팝업스토어 방문, 잔여물이 남는 인센스 스틱, 음원 대신 LP 플레이어 등 최근 2-3년간 크게 유행했던 것들은 효율성만 따진다면 선택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체험들은 대부분 가격이 비싸다. 대중적으로 소비되지 않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높고, 그 기기나 행동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추종하고 따라간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소비가 '힙'한 소비가 됐다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지가 곧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예를 들어,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감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LP 플레이어와 바이닐을 구매해 감상실을 꾸미거나, 스마트폰 대신 필름카메라를 구입해 인화를 하는 것 자체가 나의 취향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다.
취향에 진심인 MZ세대가 불편한 소비에 열광하는 이유도 결국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본인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엔믹스의 MP3 플레이어 앨범이나 에스파의 CD 플레이어 앨범도 구매자들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이 가수의 음악에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취향에 죽고 취향에 사는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한다면, 의도적인 불편함을 설계해 본인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