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백일째 만남

우리 만난 지 백일째 날

by 자두치킨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자 맑은 공기가 가벼운 몸짓으로 일렁이는 커튼을 젖히고 순식간에 폐로 밀려 들어온다.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이 얼마만인가 잠시 생각했다가 곤히 잠들어 있는 그에게 드리운 햇살이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얼른 그의 얼굴을 돌아다본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에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우면서 우리의 백일을 축복하고 있었다. 기적처럼 끝끝내 맞이한 오늘, 우리 만난 지 백일째 되는 날이다.


축하해 누나가 됐네. 눈매가 순하디 순한 젊은 산부인과 의사가 첫째에게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세 살배기 첫째는 초음파 사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캐러멜 봉지를 뜯다가 실패한 뒤 아빠에게 매달려 징징대던 참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남매가 확실시되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이 터지며 기쁨이 몰려왔다.


둘째도 첫째만큼 순했다. 입덧 역시 없었고 워커홀릭인 엄마를 졸리게 하지도 않았다. 다만 임신 30주가 되어도 임신인 줄 알아챌 수 없었던 첫째와 달리, 5개월 때부터 만삭으로 오해할 만큼 배가 나왔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첫째 때는 없던 고관절 및 치골통증이 수면을 방해하기 일쑤였고 노인네처럼 아이고 허리야 하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내아이여서가 아니라 둘째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한번 부푼 적 있던 배가 다시 늘어나기 쉬운 것은 풍선과 같은 원리라 했다. 그 외 별다른 징후 없이 임신 10개월은 무난했고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에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진통 20분 만에 둘째를 만났다. 환영해. 오늘부터 우리 1일이다. 앞으로 잘해 보자.


그로부터 99일이 더 지나 오늘 100일이 됐다. 곤히 잠들어 있는 이 작은 괴물과의 지난 100일을 되새겨보자니 그야말로 사투였다.

울음과의 사투, 우유와의 사투, 등센서와의 사투 등 그중에서도 잠과의 사투가 가장 고됐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하루 24시간을 8번에서 많게는 12번을 먹여야 한다. 두세 시간마다 일어나야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우유를 먹인 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트림은 왜 이리도 시원찮은지..

제 양도 못 채우고 잠에 빠져 축 늘어진 아이를 부여잡고 트림을 시키느라 한세월 보내고 나면 다음 수유시간이 코앞이다. 분유는 그나마 낫다. 모유양이 줄지 않도록 남은 젖을 유축해야 할 경우 최소 30분이 추가로 소요된다.

100일 동안 이 패턴으로 생활하다 보면 낮밤도 잘 구분이 안되고 오늘이 평일인지 주말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 아니, 알 필요가 없는 상황이겠지.

입히고 재우고 먹이는 엄마라는 타이틀이 생긴 이래 여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친구로서, 딸로서, 나라는 존재는 결박당한 채 100일을 보내게 된다.

그와의 만남은 황홀했지만 대가는 분명 치러야 했다.


임신은 그렇다 치고 출산 이후는 그야 말고 딴 세상이었다. 한 때 그만의 영역이었음을 과시하려는 듯 늘어진 뱃살과 문신처럼 새겨진 튼살의 자욱이나 다시는 임신 이전의 체형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나 자존감의 추락은 송두리째 흔들린 내 일상의 극히 일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에 독신주의였던 내가 둘째를 계획했고 워커홀릭을 육아홀릭으로 치환시킨 것은 무엇에 기인한 걸까.


출산 이전에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뭐라 형용하기 어렵고 직접 겪어봐야만 공감할 수 있는 거대한 감정은 분명 존재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텨내는 무력한 한 인간에서, 역설적이게도 다른 인간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엄마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했고 이제 막 세상빛을 본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고 서툴렀다. 하지만 내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 체념했던 이 뜨거운 두근거림과 날 선 긴장감. 새 출발선에서 스타트 소리를 기다리는 신선한 새날들. 그 하루하루가 또 다른 일상을 낳고 나를 성장시켰다.


둘째는 백일이라는 날짜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세 시간 수유텀을 대여섯 시간으로 늘려 낮밤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먹는 양보다 게워내는 양이 많아 과연 체중이 늘까 하는 나의 걱정을 정상체중으로 안심시켰다. 메조소프라노톤의 옹알이는 오페라가수의 그것과 흡사하게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발로 기기 시작하여 놀랍게도 직립보행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그랬지. 인생은 꿈결 같다고.

첫애가 세 살이 되어 대화가 가능해지고 둘째는 눈을 맞춰 웃고 누나의 고사리 같은 손을 단풍이파리 같은 손으로 정답게 움켜쥐고 있는 이 풍경. 어쩐지 엄마로 지낸 3년이란 시간은 내가 지나온 시간이 아닌 듯 낯설게만 느껴지고 실감 나지 않아 정말 이것이 꿈에서나 보는 광경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아이가 나를 길들이는 나날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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