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in CANADA] J에게

Life is Adventure

by 자두치킨

캐나다 시골살이 18개월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 투성이었지.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긴장을 함께 깨웠고 반복되지만 좀체 적응되지 않는 하루는 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줬어. 어느덧 뒷마당 데크에 먹이를 놓아두고 다람쥐가 오길 기다리며, Bluejay가 앉은 나뭇가지 새를 들여다보고, 야심한 밤에 정원 멀칭을 망가트린 범인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느린 시간을 보내며, 눈 녹을 틈이 없는 길고 긴 FROZEN의 겨울을 가만히 맞이했다. 우리들의 두번째 겨울이었다.

IMG_8586.jpeg 2번째 겨울의 첫눈 at Moncton

1년 전 겨울, 운 좋게 모기지를 받을 수 있어 캐나다에서의 첫 집을 장만하기로 했다. 영사관에서 위임장을 받아야 해 아이 둘을 데리고 장장 편도 10시간을 달려 몬트리올로 갔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왕복 2천키로의 여정. 몬트리올에서 퀘백시티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암흑속 눈보라가 지옥행 블랙홀 같았어. 이따금 등장한 수호신 같은 트럭의 라이트를 가로등 삼아 바짝 뒤쫓지 않으면 폭풍우 같은 눈보라에 파묻혔을 거야.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고 왕복 20시간 동안 죽음의 문턱을 몇 번씩 서성이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기름이 떨어지기 직전 발견한 주유소에서 잠깐 주유를 하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서 동상으로 얼어붙어 버릴 것 같았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추위였어. 용감했던 것 '무지'였겠지? 우리 가족이 살아서 귀가한 것은 20시간 동안 오롯이 운전대를 감싸 쥔 너의 뜨거운 두 손 덕분이다.


Prince Edward Island에 여름 휴가 갔던 날, Monkey bar 러버인 딸이 Monkey bar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둘째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돼서 우리에게 달려오던 그 눈빛이 아직도 선연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둘째가 놀랐을 마음을 다스려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돼. 투명한 눈망울은 우리에게 위험신호를 전달했다. 딸의 팔꿈치는 완전히 어긋나 있었고 911이 와도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어 우리는 샬롯타운 시내의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달렸다. 응급실에 도착해 점점 팔꿈치 근처가 멍이 드는 것을 보니 단순 탈구가 아니라 부러진게 확실했고 결국 첫째는 새벽 2시, 응급 수술을 했다. 우리는 친절한 의사의 설명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둘째가 잠든 소파 옆을 서성이며 초조하게 대기했어. 여름휴가의 숙소는 그렇게 병원이 됐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놀이공원에 가겠다고 떼를 쓰며 우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농장체험을 하고 돌아왔어. 전체 깁스 6주+반깁스까지 하면 올해 여름은 패싱이었다. 게다가 한국행 여름 휴가 일정이었는데...딸의 팔은 여름 햇살만큼이나 찬란히 회복됐고 우릴 두 차례나 응급실에 보낸 망할 멍키바에서 날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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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우연히 둘째 아이의 야외 놀이시간에 학교를 지나치게 됐어. 그때 우리 아들은 양 손을 주머니에 무심히 찔러 넣고 우두망찰 다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다. 완전히 홀로 구석에서 외로이. 그 모습을 보던 찰나 아이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한 눈망울이 우리와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내 손길과 목소리는 살가웠지만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 애써 웃으며 돌아오는 차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를 무너뜨렸다. 웃으며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이 내심 고맙기도, 불안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은 아이들 몫이며 아이들은 스스로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굳은 믿음은 어쩌면 잘 지내길 바라는 간절한 자기 위안이 아니었을까, 자책했지. 알파벳조차 몰랐던 아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그저 내던져졌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 싶어. 아이들은 1년 반 동안 해외의 첫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성장했을까? 부모인 우리조차도 회피했던 언어와 낯선 환경을, 아이들은 고스란히 맞닥뜨렸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이 보물들에 대한 고귀함을 감히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있을까?

나날이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내 모습을 보며, 그토록 원망했던 내 부모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 그들도 최선의 선택을 했을 거고 우리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더 가난했기에 더 많이 시렸겠지. 어리석게도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이해하다가 죽는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이 깨달음을 단 하루라도 앞당기고 싶다.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이 없는 동네다 보니 먹고 싶은게 유독 많았지. 너는 매일 빵을 구웠고 케이크를 만들었고 결국은 스시와 연어회, 분짜, 스프링롤까지 섭렵하기에 이르렀다. 외식비가 워낙 비싸고 맛있는 레스토랑도 찾기 어려우니 집에서 해 먹는게 가성비도 좋고 가장 맛있었지. 하루 종일 주방에서 나를 포함한 세 아이들을 해먹이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어미새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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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연장의 방법이 전무해 어쩔 수 없이 1년만에 캐나다 첫 보금자리였던 드림하우스를 매물로 내놓았다. 3개월은 족히 걸릴 거라는 리얼터의 예상을 비웃듯 2주만에 새주인을 찾았다. 홈디포나 RONA같은 대형 건축자재 서플라이어 덕분에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앞마당에 데크를 직접 설치하고, 정원에 사철나무를 심고, 해골산타를 장식하고, 우리의 정성이 새 주인에게도 전이된 게 틀림없다 생각했어.

발품 팔아 모은 엔틱가구들이 네 손에서 재탄생했고 이웃들이 하던 가라지세일(차고에 물건들을 모두 내놓고 중고를 싸게 파는 행사)을 하면서 가구들이 팔릴 때마다 시큰해진 가슴이 추스르지 못한 감정을 입밖으로 튕겨냈다.

"Good bye, D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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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만 쫓다보니 실상 내 꿈이 캐내디언으로써의 정착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어. 영주권이 막히니 다음 스텝이 보인다. 나는 캐나다 사회에 녹아들어 뿌리 내리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1년 6개월의 캐나다살이에서 더욱공고해졌다.


우리 넷은 한 팀이야. 맡은 바가 다를 뿐 우리는 각자 막중한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 중이지. 나 홀로 탑승한 한국행 비행기에 우리 가족의 미래와 꿈이 실려 있고 캐나다에 남아있는 너에게는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생계가 달려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한 팀으로 새로운 경기를 시작하려 한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이번 생이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인식하는 한 첫번째이자 마지막 인생이라면 더욱 다채로운 색상으로 유한한 이 삶을 물들이고 싶다. 더 많은 도전과 변화를 통해 삶이 선사하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만끽하며.

또 다시 시작이다.




때로 내 전부를 걸고 진심으로 부딪히지 않는다면

어디가 끝인지 알 수는 없겠지

부끄러움을 뚫고 무리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순 없을 거야

무엇이 있는지 어떤 것이 진짜인지 깨닫기 위해

어느 날 조용히 난 길을 나섰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딘가 새롭고 낯선 곳을 찾기 위해

이제부터 난 저 멀리 떠날 거야


빛나라 너의 이름 너의 내일 너의 꿈꾸던 날

빛나라 너의 생각 너의 젊음 너의 사랑까지

빛나라 너의 미소 너의 눈빛 너의 노래 너의 눈물까지

빛나라 너의 실패 너의 서툰 처음들 모든 걸 바쳐서


https://youtu.be/xGIorDT21Ig?si=Dx5OSI6dIQNa40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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