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AI와 대화는 이어지는데, 사고는 이어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매번 처음부터 다시 묻는가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AI를 꽤 오래 썼다.

대화 기록도 길다.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 만큼.


그런데도
어느 날 또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브랜딩 전략 어떻게 잡지?”


분명 예전에 물어봤다.
비슷한 답도 들었다.
그때도 “오 괜찮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또 처음처럼 묻고 있다.


마치
어제 대화가 없었던 사람처럼.


이상하다.


대화는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



우리는 ‘대화’를 한 게 아니라 ‘검색’을 반복했을 뿐이다


AI 사용 패턴을 가만히 보면 거의 똑같다.


궁금해진다
→ 묻는다
→ 답을 읽는다
→ “아 그렇구나”
→ 창 닫는다

끝.


다음 날.


또 궁금해진다
→ 다시 묻는다


여기에는 빠진 단계가 하나 있다.


결정


우리는 거의 결정하지 않는다.


그냥 듣고,
고개 끄덕이고,
넘어간다.


그러니 남는 게 없다.


마치 유튜브 쇼츠 50개 본 느낌과 같다.


많이 본 것 같은데
기억나는 건 없다.



AI는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준다


이게 더 무섭다.


AI는 매번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설명해드릴게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친절하게 리셋해준다.


과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전 결론을 묻지 않는다.
그냥 또 새로 정리해준다.


그래서 착각이 생긴다.


“계속 배우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새 출발 중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걷는 것과 같다.


땀은 나는데
위치는 그대로다.



‘기억’과 ‘축적’은 다르다

AI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럼 우리는 느낀다.


“오, 기억하네?”


맞다.
기억은 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 참조다.


진짜 문제는 이거다.


내 머릿속 판단이 하나도 고정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브랜드 해보고 싶어.”


AI: 전략 설명


다음 날
“타깃 설정 어떻게 하지?”


AI: 또 설명


또 다음 날
“네이밍 아이디어?”


AI: 또 설명


이렇게 보면 연결된 대화 같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20대 여성 타깃으로 간다.”
“가격은 중저가로 확정한다.”
“이 방향 유지한다.”


결정이 없다.


결정이 없으면
다음 질문은 항상 ‘처음 질문’이다.



많이 쓰는데 실력이 안 느는 진짜 이유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AI 1년 썼는데 왜 실력은 그대로지?”


이유는 단순하다.


정보는 소비했지만
사고는 한 번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는 건 소비다.
고개 끄덕이는 것도 소비다.


축적은 언제 생길까?


내가 ‘결론’을 말했을 때


“나는 이렇게 하겠다.”


이 문장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사고가 내 것이 된다.


그 전까지는
전부 남의 생각이다.


AI의 생각,
정리된 문장,
깔끔한 구조.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생기는 착각

AI와 오래 대화하면
이런 느낌이 든다.


“나 되게 많이 생각한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니다.


많이 읽었을 뿐이다.


사고는
읽어서 생기지 않는다.


결정해서 생긴다.



아주 작은 전환


거창한 방법은 필요 없다.


질문하기 전에
이 문장 하나만 붙이면 된다.


“지금까지 정리하면 우리는 이 방향이다.”


이 한 줄 때문에
모든 게 달라진다.


AI 답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내 머리가 달라진다.


매번 같은 땅 위에
벽돌을 하나씩 쌓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대화는 소비가 아니라
축적이 된다.


AI와 긴 대화를 나눴다고
사고가 깊어지는 건 아니다.


질문 수가 많다고
성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성장은
많이 묻는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쌓는 사람에게 온다.


대화가 아니라
판단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1층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겠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떻게 하면 바로 8층처럼 사고할 수 있나요?”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고에는 지름길이 없다.

이해는 누적이고,
판단은 경험이며,
통찰은 반복의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1층에서 한 걸음,
내일은 또 한 걸음.


그 느린 걸음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다.



다음 회차 예고


다음 회차에서는 “AI 답변은 많은데, 결정은 왜 더 어려워질까”를 다루겠다. 선택 마비 현상을 1층 구조에서 해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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