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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23. 2020

[Ep2-23]그런데 왜 하필 호주였을까?

<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일곱번째 이야기

한국과 헤어진 계나는 호주로 떠났다. “한국이랑 왜 헤어졌어?” 라는 질문 이후로 자연스럽게 다음 궁금증이 올라온다. 새로 만나는 연인에 대한 호기심 비슷한 거랄까. 또다시 계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호주를 선택했어? 호주가 왜 좋은데?”


일단, 따뜻한 곳이다. 계나가 아주 좋아하는 책 중에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파블로는 펭귄이지만 추위를 싫어한다. 그래서 따뜻한 열대 지방으로 떠나려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수많은 실패를 거쳐 결국 하와이처럼 생긴 섬에 도착했더니,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파란 바다 앞에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야자수 사이에 해먹을 쳐서 그 위에 누워 있고 음료수를 마시며 부채를 부치고 있다. 그 아래 “다시는 춥지 않을 거예요.”라는 멋진 글귀가 있다.


바로 이 친구다. 추위를 싫어한 펭귄, 파블로


한국의 추위를 너무 싫어한 계나도 다시는 추위를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온돌방에 누워서도 슬그머니 좀 더 뜨끈한 아랫목을 찾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니,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계나가 더운 남쪽 나라를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반구에 있어 10시간도 훌쩍 넘는 시간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호주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계절을 가진 나라이다. 물론 한국이 여름일 때 호주는 겨울이니까 겨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호주 도시들은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누릴 수 있는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계나가 선택한 도시인 시드니는 가장 추운 7~8월이라도 평균 영상 17도 정도라니. 한국에 비할 수 없이 따뜻하다.


자칭 연애 박사인 친구가 자고로 연애는 따뜻한 사람이랑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조언에 따르면 계나가 한국을 떠나 따뜻한 호주를 간 것은 딱 맞는 선택이었다. 그래, 호주는 따뜻하고 매력적이다. 호주의 지역 이름 중에 골드 코스트, 선샤인 코스트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따뜻한지.


브리즈번에서 차로 약 1~2시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이 따뜻한 섬나라는 땅도 무지하게 넓고 넓고 또 넓다. 광활한 토지는 비옥하고 자원도 풍부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늦게 개발된 이 신대륙은 심지어 큼직한 땅에 비해 사람이 적게 살아서 인구밀도마저 낮다. 호주의 전체 면적은 7억 7,412만 헥타르에 약 2,55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국은 남한 기준으로 1,003만 헥타르의 면적에 인구는 약 5,178만 명이다. 고로, 호주는 한국보다 대략 77배가 더 큰 땅에 절반의 인구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대자연의 면적도 크다고 백번 양보해도,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산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다! 여기서라면 아침이든 저녁이든 몇 시에 나오더라도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조건들은 호주를 워킹홀리데이에 관대하고 적극적인 나라로 만들어주었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할 수 있는 나이가 만 35세까지로 꽤 넉넉한 편이고, 대부분 국가가 신청기한과 선발인원이 제한하는 것에 비해 장벽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기준과 진입 장벽이 점점 높아졌다고는 하더라. 그래도 계나는 한국에서 온갖 기준과 문턱을 넘어오느라 지쳐 있었을 테니, 호주에서 까다로운 비자발급을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영받는다는 느낌이었을 거다.


호주로의 탈출 시도는 현재진행형


호주도 원주민이 있긴 하지만, 도시와 국가를 이루는 주축은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이민자들이다. 실제로 호주 인구의 약 4분의 1이 이민자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여러 민족과 문화가 뒤섞인 만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존재의 평등함을 지향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중요해졌다. 이런 문화가 법에도 반영되어서 인종차별금지법이 있다.


더불어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노동의 가치를 정직하게 인정하려는 문화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직업은 물론이고 대학교, 학과,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심지어 산후조리원까지 아주 세밀하게 서열화된다. 이에 비해서 호주는 직업의 귀천이 크게 없는 편이다. 의사나 변호사든 바리스타나 청소부든 자기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일에 따라 받는 임금도 격차가 작다. 농장에서 빡세게 딸기 따고 양파 캐서 몇 달 만에 수 천만 원을 모았다는 워홀러들의 증언이 아주 허풍은 아니다.


저 드넓은 호주의 대지를 보라!


호주 국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과 함께 무한한 토지를 나눠갖는(For those who’ve come across the seas. We’ve boundless plains to share)” 정신이 있는 곳이라 믿었기에, 계나는 희망을 품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시점에 계나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2천만 원이 전 재산이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중요한 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다. 그 가능성만을 보고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계나는 칼바람이 부는 서울을 떠나 따뜻한 도시, 시드니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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