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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27. 2020

[Ep2-27]난 뒤를 안 봐. 그래서 베이스 점프!

<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열한번째 이야기

내가 호주에 간 것은 내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한 일이야. (p.123)


“더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호주행을 택한 계나는 동생 예나가 장래가 불투명한 베이시스트와 사귀는 것을 비교하면서 신분상승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그리고 예나의 선택을 베이스캠프에 비유한다. 베이스 점프는 지상에 있는 건물이나 안테나, 교각 절벽 등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물론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허용되는 곳이 극히 드물다.


베이스 점프를 하는 용감한 남자의 모습이다.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게 더 위험해.(p.124)


계나는 스스로 한국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봤자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는 힘들뿐더러 지금도 안 좋은 이 상황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동생 예나가 비전이 없는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은 낮은 곳에서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며 그렇게 되면 다시는 올라갈 길이 없다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에게 희망보다는 노오력해도 어차피 안된다는 좌절감을 심어주고 있다. 예전보다 굶어 죽을 일은 거의 없고 생존의 문제에서는 멀어졌지만, 다른 욕구들은 채워지지 않는다.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의 기준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에서 너도나도 데려가던 시대의 젊은이들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한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자기 집 차고에서 회사도 설립하고 노력해서 다 일궈냈어. 노력도 안 하고 눈만 높아서는.’이라고 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젊은이가 “저희는 집이랑 차고가 없는데요”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은 현실을 살아가며 이런저런 장애와 조건을 만나고 결국 자기 포부를 줄여나가게 된다는 포부 이론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난 무조건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 아니면 안가.’ 라고 생각했지만, 2학년 때부터는 ‘일류가 아니어도 좋아.’ 로 바뀌고 3학년이 되면 ‘인 서울 대학만 가자.’ 라고 타협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무엇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마음이라도 좀 편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행복하지 않다.


이런 표현이 상식으로 통용되니 말 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고 취업,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N은 여러 숫자를 지칭하는데, 3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 5포 세대는 3포에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세대, 7포 세대는 5포에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를 뜻한다. 현재 젊은이들은 자발적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에서 살고 있다. 더 높은 목표와 꿈을 설정하기보다는 위험한 베이스 점프를 뛰게밖에 할 수 없는 구조 말이다.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다. 경쟁에서 도태되면 구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나 길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베이스 점프 말고 더 높은 곳에서의 점프를 꿈꾸며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높이려던 계나에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계나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메리톤 서비스 아파트를 빌려 각 방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소규모 임대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엘리라는 자유분방한 친구를 알게 되는데,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지 취미가 무려 베이스 점프다. 엘리는 자신의 YOLO 정신을 뽐내며 메리톤 서비스 아파트 58층에서 이 베이스 점프를 실행한다. 그리고 계나는 곤경에 빠진다. 호주에서도 베이스 점프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계나는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극심한 경제적 손해까지 입는다. 계나의 마음은 58층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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