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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 Jul 31. 2023

영화 Oppenheimer 리뷰

주목받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최후

이제는 매우 정겨운 아바톤 키노.

허리 회복 후 평소에 좋아하던 중거리 하이킹을 쉬기로 결심하고 비는 시간에 영화관에 열심히 다녔다. 독일에서는 웬만한 영화는 더빙으로 상영하기 때문에 영미 영화를 원어로 보려면 특정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 다행히 사무실 근처에 영어로 영화를 보여주는 Abaton이라는 극장이 있어서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중앙역 근처에도 Savoy라는 상영관이 딱 하나 있는 소극장이 있는데 그곳도 매우 자주 다니게 되었다. 열심히 다니다 보니깐 조만간 어떤 영미권 영화가 상영하는지 잘 알게 되는데, 오펜하이머 포스터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글을 보는 순간 당연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 <조디악> 등으로 워낙 유명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Savoy 영화관에서는 오펜하이머 붐을 예상하듯이 크리스토퍼 놀란 회고 이벤트로 <인셉션>을 상영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대감이 컸던 영화였다.

인물 중심 영화


이 영화는 인물 중심, 그것도 매우 재능 있고 유망한, 유명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보고 나니깐 3월 중순경 봤던 <타르>가 떠올랐다. 두 영화는 매우 유능한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그 캐릭터의 여러 가지 면모 - 열정, 개인적 감정들, 그리고 도덕적 고민에 대해서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그래서 영화 첫 부분은 사실 전기같은 느낌이 강하다. 극본 자체는 액자식 구성이어서 오펜하이머가 스파이 혐의가 있는지 일종의 심문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의 과거가 전기식으로 펼쳐진다.

전기식 구성 때문인지 첫 부분은 위인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그닥 놀랍지 않은 유년기와 성장기가 펼쳐지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묘사된다. 관객이 생각하는거랑 다르게 그는 엄청나게 천재도 아니었고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만 물리학에 대한 열정은 가득한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당시 양자역학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독일 Göttingen에서 박사과정 수학을 하였고 네덜란드 Leiden 대학 등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뒷부분의 이야기 때문인지 이 다음 부분부터는 그의 학자 외의 면모가 다양하게 그려진다. 물리학만 좋아하는 사람인것 같지만 그는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고, 공산주의 운동자들과 가까이하게 된다. 학과에서는 교수나 박사과정생들, 여러 연구진에게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당시 파시즘의 온상이라고 여겨진 스페인 내전에 대한 투쟁을 사람들에게 당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펜하이머는 미국 정부로부터 원자 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이끌어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그렇게 해서 영화의 핵심인 원자 폭탄을 만들게 된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그 원폭 말이다.


과학자와 정치가의 경계


아마 이 영화를 삼등분 한다면 첫 부분은 원폭 프로젝트를 이끌기 전, 두번째는 원폭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과정, 그리고 세번째는 액자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심문을 받는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번째 부분이 그렇게 완성도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아무래도 첫번째 두번째 부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감독이 시간이 부족했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 면에서 원작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자식 구성으로 돌아와서 세 번째 부분에서는 그가 왜 원폭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음모론에 희생된 과정을 보여준다. 말했듯이 이 부분은 앞 전기식 진행에 비해서 디테일이 매우 떨어지는데 그래도 요약을 한다면 그의 도덕적 갈등 - 원폭 투하 이후에 생긴 양심의 가책들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인 것 같았다. 그 부분이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는 아주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을 파헤치는 심문회에 작정을 하고 그를 몰아세우는 검사관의 대사에서 이 메시지가 묻어난다 - '원폭에 대한 도덕적 가책이 원폭을 만드는 동안 생겼나요 후에 생겼나요?' 그렇게 세 번째 부분은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의 딜레마와 여러 가지 정치적 음모론에 휩싸이게 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반복한 것처럼 아주 자세히 나오지는 않고 마치 감독이 러닝타임이 부족해서 마구 여러 정보를 묶어서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여담


유럽 각지에서 공부했지만 결국 미국 대지로 돌아간 오펜하이머.

나는 파트 3에 등장하는 Lewis Strauss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했는데 조사해 보니깐 이 사람은 미국 핵개발 그리고 핵무기 정책이 발전하던 초창기 정부 내 중요직위에 있던 사람이고 오펜하이머와 정책적인 면에 대척하였다. 영화에는 '나는 신발 장수요'라고 스스로 소개하는데 이 부분이 나오는 이유는 이 사람의 아버지가 신발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고 본인은 자수성가한 경제 등 금융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스트라우스의 역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했는데 이 점을 나는 팟캐스트로 후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이 사람과의 대척 관계가 왜 발전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가 상세하게 표현되지 않아서 아쉽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라이벌 의식과 의심, 그리고 정치적 음모가 왜 발생하였는지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두고 어떤 정책적 갈등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이때 오가던 논쟁이 deterrance '억제설'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핵무기와 전쟁 연구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답답할 듯.

팟캐스트 후기와도 동의한 부분인데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해석이 영화 속에서 전혀 없다. 오펜하이머의 오랫동안 연인이었던 Jean Tatlock은 영화만 보면 무슨 공산당 이데올로기에 빠져든 섹시한 여자 정도로만 묘사된다. 하지만 그녀는 스탠퍼드에서 의학을 공부한 심리학자였고 1940년이라는 시대를 감안해 보면 매우 유능한 여자였다. 아쉽게도 영화에서 그녀의 역할은 그저 오펜하이머의 오랜 연인이자 불안정한 여자로만 그려진다.

오펜하이머 영화의 원작은 2005년 출판된 <American Prometheus>이다. 영화 초반부에 인용한 부분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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