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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Jan 22. 2022

그런데, 내게 그런 일이 생겼다.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그 분위기도 아주 좋아한다.

그건 서점을 좋아하는 거랑 같은 것이다. 조용히 책을 보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보는 타인을 배려해주는 그 분위기가 좋다.

미술관에 갈 때면, 늘 운동화를 신고 간다. 갖고 있는 운동화 중에서 가장 편한 것.

때로는 미술관에 가니까 나도 멋지게 입고 가야지.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신발은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전시를 보면 다 보는데 최소 3시간은 걸린다. 걸음걸이가 빠른 내가 그곳에선 천천히 남들보다 더 느리게 걷는다. 느리게 걸으며 차분히 보다 보면, 그림 속으로 들어갈 듯이 몰입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행복함을 느낀다.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

또 언제가 있을까?

새벽 같은 아침에 차 한잔 마시고 혼자 글을 쓰는 시간, 그림을 그리는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실 아주 사소한 시간들이다. 무언가 아주 특별한 순간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때가 아닐까


내게 집중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2 전부터 최근까지.

영화나 책을 보면 가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쌓인 것이 폭발했습니다.'

'한동안 휴식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곳에 가서 요양이 필요합니다.'

같은 구절이 나오곤 한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여서 폭발했다는 것이 그저 잠시 폭발 후 괜찮아짐 정도로 생각했다.

한동안의 휴식 역시 1주 길면 1달 정도의 휴식으로 알았다.

그런데, 내게 그런 일이 생겼다.

30년이 넘게 쌓여온 스트레스와 긴장과 불안이 비커에 물이 채워지듯 간당간당, 아슬아슬하게 차다 넘쳐흘러버린 것이다. 물론 계기라는 것이 있었다. 남들도 다들 1번씩은 겪는다는 층간소음이 그 계기였다.

그냥 자고 나면 괜찮겠지가 아닌, 정말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내 감각은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장 힘든건 몰입을 하지 못한다는 것.

세상 모든 소리에 나의 뇌가 반응을 하고 있었다. 매 순간 아주 미세한 떨림에도 반응을 했고, 남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감각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이전까지 시각에 까다로워도 청각에는 둔했던 내가 만사 예민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돌이켜보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살이 너무 많이 빠졌던 것이, 옷 만드는 걸 배우고자 서울로 왕복 4시간씩 매일 다녔던 것이, 밤샘 작업을 하거나 인간관계에 대해 새벽 내내 고뇌했던 것들이 나의 비커를 점점 채워갔던 것 같다. 사람의 손길이 스치기만 해도 살이 아프고 옆에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괴로웠다.


20대부터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몸을 혹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나 나는 열정 세대였다.

열정 페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에 시급을 바라는 것이 세상 물정 모르고 건방진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패션계에서 인턴을 하면서, 한 달에 한번 교통비라도 지급이 되면, 감사하며 다녔다.

2000년대 중반에 내수 브랜드에서 가방으로 히트 치는 것이 전무했는데, 그 힘든 것을 해낸 브랜드가 있었다. 그곳에서 무급인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돈도 받지 않고 언제까지인지도 모르는 무급 인턴을 하기에는 내 코가 석자였다. 그래서 나는 못하겠다고 했고, 감히 돈을 바라는 존재가 되어 억울하지만, 창피해야 했다. 그런 시기를 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한참 작업을 할 때는 출판사에서 표지 값은 따로 받는다는 말을 했다가 돈이나 밝히는 작가라는 소리를 듣고, 그 출판사와는 안녕을 고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가장 아까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들이 하루 이틀, 해가 지나며 기억에서 흐릿해지면서, 당연히 스트레스 역시 사라졌다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2년간 나는 병원과 한의원, 뇌파 치료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매일 명상을 하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산다는 것은 보통의 일상에서 보통으로 살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매일 이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은 어떤지 살피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 매일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

말도 안 되지만, 이 간단한 행위를 매일 하는 것이 답이었다.

마치 예습 복습을 매일 하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처럼. 답은 늘 말도 안 되게 간단했다.

나는 이 간단한 행위를 2년간 매일 했고, 다행히 2년간 조금씩 좋아져 지금은 거의 보통에 가까워졌다.


그동안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동작업실에 나가게 되었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으며,

아침에 모닝 콜라주를 하게 되었고, 수채화 작업과 아크릴, 유화를 사용해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매일 하는 것을 잘 못하던 내가 매일 명상을 하며, 매일 하는 것을 늘려가고 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늘 성공하고 싶었던 나는

즐겁게 사는 것, 맛있는 것을 먹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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