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신은지
가을마다 엄마와 여행을 떠난다. 작년에는 남원, 재작년에는 강릉.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올해는 제주로 목적지를 정했다.
숨쉬듯 여행을 떠나다보니 이제 제주도도 매년 찾는 섬이 됐다. 더이상은 관광지를 찾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머물 수 있는 동네를 찾고 싶은 마음에 향한 곳, 바로 조천읍 신흥리. 함덕과 조천을 잇는 해안도로 아래 자리한 작은 어촌 마을로, 오래된 방사탑이 남아 있고, 골목마다 고요한 바람이 스친다.
함덕해변에서 멀지 않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북적이는 인파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낮은 돌담이 이어진다.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 드문드문 방사탑이 서 있고, 그 너머로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도착한 곳, 로메니가 그 길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로메니는 바닷가의 고요함이 일상처럼 머무는 돌집 스테이다. 한때 폐가에 가까웠던 오래된 집을 호스트 부부가 1년 동안 정성껏 손보아 새롭게 태어난 공간이라고.
돌과 나무, 흙이 어우러진 구조 속에서 제주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곳곳에 자연의 질감이 살아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결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로메니에 머물면서 참 좋았던 8가지 경험을 전한다.
초록빛 정원이 비치는 거실은 낮고 길게 난 창 덕분에 한층 더 평화로운 인상을 준다. 햇살이 천천히 스며드는 공간 안에는 빈티지 가구와 목재가 조화를 이루며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서까래 구조를 그대로 남겨둔 덕분에 옛집의 흔적이 은은히 남아 있고, 새로 덧입힌 모던한 디테일이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균형을 이루는 이 거실은 그 자체로 로메니의 성격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바깥의 바람소리와 정원의 초록빛이 하나로 섞여 조용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엄마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공간은 주방. 거실 방향뿐 아니라 다이닝 공간 쪽으로도 창이 나 있어 채광이 풍부했고, 그 너머로는 뒷마당이 연결되어 있었다. 배롱나무와 버베나 같은 식물이 자라는 작은 정원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넓은 아일랜드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이 함께 모여 요리하고 식사하기에 알맞은 구조였다. 온가족 함께 또 오자는 말이 계속해서 나왔던 우리.
특히 11자형 아일랜드 구조가 엄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천장이 높고 상판이 넓어 근사한 셰프의 주방에 온 듯한 개방감이 있었다. 아일랜드 하단에는 오디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보기에도 세련되고 실용적이었다. 우리는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천천히 차를 마시며 오후의 여유를 즐겼다.
주방에는 아기자기한 가전이 가득해 사용하는 재미도 있었다. 고품질 원두와 함께 드롱기 원두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이 구비되어 있어 카페 부럽지 않은 커피 한 잔을 맛보았다.
웰컴 간식으로는 호미 베이커리의 빵이 제공되는데, 방문 당시 임시 휴무라 대신 준비된 오드랑 베이커리의 빵이 놓여 있었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어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들러 다시 사 갔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고 또 매력적이었던 호스트님의 큐레이션.
거실과 침실 사이 복도는 여유 공간과 계단실을 살려 드레스룸으로 꾸며져 있었다. 유럽의 오래된 가정집을 닮은 듯한 감성적인 디테일 속에서 옷을 정리하는 일마저 즐겁게 느껴졌다. 아날로그 다리미와 세탁기가 구비되어 있어, 단순한 숙소가 아닌 ‘생활이 가능한 집’으로 완성된 공간이었다. 엄마는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여행 중에도 생활을 돌보는 여유를 주는 곳.
욕실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사용하기에 편리했고, 따뜻한 조명 아래 타일의 색감이 공간에 생기를 더했다. 특히 바닥 타일의 컬러 조합이 사랑스럽고 경쾌했다. 작은 패턴이 반복되는 그 키치한 느낌이, 이 집의 전체적인 무드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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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도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방은 편안함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구성이었다. 매트리스는 너무 푹신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아 몸이 자연스럽게 이완되었고, 침구와 커튼의 질감은 내추럴한 린넨 소재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조명의 밝기도 적당해 창밖의 빛과 어우러질 때 가장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방 안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절제된 단정함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여행지의 낯섦보다 ‘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공간이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었다.
로메니의 구조를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2층 다락방이다. 1층 거실에서는 수평의 창으로 초록빛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다락으로 올라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높은 천장 아래 수직의 창을 통해 정겨운 마을 풍경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공간 안에서 이렇게 상반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락에는 책과 향이 놓여 있어 자연스럽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는 창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뜨개질을 하며 바다를 바라봤다. 따뜻한 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공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휴식이었다.
해가 질 무렵 구름이 붉게 물들며 창문 너머로 천천히 스며드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로메니는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여행에도 완벽한 스테이다. 계단 입구에는 접이식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머무는 사람의 일상과 안전을 고려한 호스트님의 세심한 마음이 느껴졌다.
정원 맞은편에는 노천탕이 자리하고 있었다. 옛 돌집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러프한 석재와 짙은 목재가 어우러지고, 자연스러운 질감의 타일이 더해져 아늑한 동굴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크기가 넉넉해 온가족이 함께 와도 충분히 여유로워 보였다. 주변의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져 이곳에만 흐르는 고요한 리듬이 느껴졌다.
노천탕은 낮보다 저녁에 더 매력적이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노란 불빛. 엄마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내니 하루의 피로가 천천히 풀려갔다. 때마침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물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정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지내다보니 로메니는 무조건 2박 이상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이 동네의 여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피크닉 소품을 무료로 대여해준다는 점. 웨건, 파라솔, 버너, 바람막이, 버너가스, 피크닉매트, 코펠세트, 바구니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갈퀴나 망 같은 해루질 용품도 마련되어 있어, 해가 질 무렵 바다를 걸으며 조개를 줍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의 바닷가에서 즐기는 이 소소한 경험이 로메니의 진짜 매력이었다.
주방에서도 작은 즐거움이 이어졌다. 은은한 조도와 빈티지한 감성의 조명, 따뜻한 오브제 덕분에 식탁 위 한 상차림이 더 근사하다. 집에서는 미처 이렇게 차려 먹지 못했는데, 여행지에서는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탓인지 사소한 준비의 시간도 행복했다.
넓은 테이블은 식사 외에도 활용도가 높았다. 책을 읽거나 간단히 노트북을 펼쳐 작업하기에도 좋았고, 안쪽 선반에 놓여 있던 스도쿠를 꺼내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기도 했다. 가벼운 놀이지만 함께 웃고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참 즐거웠다.
밤이 되면 거실은 또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선명도가 높은 빔프로젝터가 설치된데다 오디오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음향까지 완벽했다. 불을 낮추고 영화를 틀자마자 작은 영화관이 완성됐다. 스테이에서만 시간을 보내도 이토록 하루가 짧다니.
조용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로컬 분위기가 가득한 수제버거 하우스가 나타난다. ‘무거버거’는 제주산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버거로 유명한 곳. 당근·시금치·마늘 등 재료의 색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직접 만든 소스와 패티의 조화가 훌륭하다. 바다를 향한 창가석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버거 한 입을 베어 물면, 이곳이 왜 ‘가장 제주다운 버거집’이라 불리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릭요거트를 새롭게 해석한 가게. 일반적인 그릭요거트의 진한 신맛 대신 고소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며, 재료 본연의 산뜻함이 살아 있다. 신선한 과일과 그릭요거트를 가득 눌러 담은 요거트산도는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산책 중 들러 사온 디저트를 두고두고 꺼내 먹었다.
소박한 외관 속에 숨은 찐 로컬 맛집. 신흥리에서 ‘한 끼 식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신흥리는 조용한 동네가 매력적이지만 음식점은 많지 않은데, 로메니에 머문다면 도보 5분 거리에 자리한 이 식당을 꼭 방문해볼 만하다. 대표 메뉴는 동태찌개로, 뒷마당에서 직접 캔 미나리를 넣어 끓인 국물의 향이 유난히 깊고 개운하다.
신흥리에서 가장 달콤한 장소. 제주산 망고로 만든 빙수가 시그니처 메뉴로, 진한 과육의 단맛과 부드러운 얼음이 어우러져 휴양지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메뉴마다 제철 과일을 활용해 계절의 색을 담아내며, 감각적인 플레이팅이 더해져 보는 즐거움도 크다.
신흥리의 감도를 높이는 공간 중 하나. 따뜻한 조명과 빈티지한 인테리어, 그리고 섬세하게 준비된 디저트와 음료가 조화를 이룬다. 아인슈페너, 말차라떼, 더치 큐브 라떼 등의 메뉴는 모두 퀄리티가 높다. 로메니 근처 바닷가를 걷다가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즐기기 좋은 곳.
로메니에서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현실적인 선택지. 신흥리는 아니지만 인근 함덕에 위치한 횟집으로, 신선한 활어회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저녁에도 배달이 가능해 숙소로 돌아와 프라이빗하게 한 상 차리기 좋다.
이렇게 신흥리와 로메니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마침내 찾아온 이 여정의 마지막 날. 엄마와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짐을 쌌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불어오고, 정원에는 햇살이 고르게 쏟아졌다.
머무는 내내 느낀 건, 로메니가 단순히 잘 꾸민 숙소가 아니라 ‘사람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집’이라는 점이었다. 이곳의 모든 디테일은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실용의 아름다움이었다. 여행이지만 집처럼, 낯설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균형이 로메니만의 가치였다.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짧은 머무름이 끝나고 문을 나서면서도, 이곳의 공기와 온기가 오래 남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집의 기억은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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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신은지
공간을 통해 세상을 읽는 뚜벅이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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