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머니 Sep 16. 2023

직업에 대한 뿌듯함

내 직업은 UX디자이너이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던 어떤 날의 기억.


아주 오래전

UX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정확히 없었던 그 시절에

UX디자이너로 처음 입사한 내게 맡겨진 첫 업무는

새로 출시할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상상 속의 사용자를 생각하며

화면상에 버튼은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그 사용자가 최대한 쉽고 빠르게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입력하고 번호를 저장시킬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것들을 몇 날 며칠을 끙끙대고 고민하며 디자인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퇴근 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자분이 우리 회사 휴대폰을 가지고 내가 디자인한 그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기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디자인한 것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 상상 속의 사용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여자분이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그 기능을 (그게 아무리 단순한 기능이었다 할지라도) 내가 고민하고 의도한 그대로 정확히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때의 그 짜릿했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뭐랄까, 내가 만들어낸 그 무엇인가가 

실제 일상에서 어떤 사람의 삶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조금은 거창한 생각.


그 뒤부터였다.

나는 UX 디자인이라는 것에,

그리고 그것이 내 직업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디자인을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마음껏 누리며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의미 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바꾸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시장,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을 그들의 일상에서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현재 미국이라는 곳에서 UX 디자이너로서 일 하고 있는 이유이다.


요즘도 가끔 신기하다.


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내가 디자인한 어떤 화면에 대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회사의 회의실에 모여 영어로 막 회의를 하고

개발자들은 그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결국엔 그 결과물이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에 가서 닿는다.


나는 어쩌다 UX 디자이너가 된 것일까.

나는 어쩌다 이 먼 미국까지 와서

여전히 UX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 먼 옛날에 버스에서 봤던

그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실제 사용자를 봤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하고 행복했던 기분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디자인하게 되겠지.


그 여정을 가다 보면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잘 풀리는 날도

혹은 반대로 좌절 가운데 잠 못 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날 그 버스에서 느꼈던

처음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오늘도 다짐

또 다짐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 수 있음에

참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존에서 보낸 2년 6개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