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UX디자이너이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던 어떤 날의 기억.
아주 오래전
UX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정확히 없었던 그 시절에
UX디자이너로 처음 입사한 내게 맡겨진 첫 업무는
새로 출시할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상상 속의 사용자를 생각하며
화면상에 버튼은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그 사용자가 최대한 쉽고 빠르게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입력하고 번호를 저장시킬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것들을 몇 날 며칠을 끙끙대고 고민하며 디자인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퇴근 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자분이 우리 회사 휴대폰을 가지고 내가 디자인한 그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기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디자인한 것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 상상 속의 사용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여자분이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그 기능을 (그게 아무리 단순한 기능이었다 할지라도) 내가 고민하고 의도한 그대로 정확히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때의 그 짜릿했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뭐랄까, 내가 만들어낸 그 무엇인가가
실제 일상에서 어떤 사람의 삶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조금은 거창한 생각.
그 뒤부터였다.
나는 UX 디자인이라는 것에,
그리고 그것이 내 직업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디자인을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마음껏 누리며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의미 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바꾸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시장,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을 그들의 일상에서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현재 미국이라는 곳에서 UX 디자이너로서 일 하고 있는 이유이다.
요즘도 가끔 신기하다.
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내가 디자인한 어떤 화면에 대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회사의 회의실에 모여 영어로 막 회의를 하고
개발자들은 그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결국엔 그 결과물이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에 가서 닿는다.
나는 어쩌다 UX 디자이너가 된 것일까.
나는 어쩌다 이 먼 미국까지 와서
여전히 UX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 먼 옛날에 버스에서 봤던
그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실제 사용자를 봤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하고 행복했던 기분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디자인하게 되겠지.
그 여정을 가다 보면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잘 풀리는 날도
혹은 반대로 좌절 가운데 잠 못 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날 그 버스에서 느꼈던
처음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오늘도 다짐
또 다짐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 수 있음에
참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