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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밍박 Nov 28. 2021

나이는 마흔, 마음은 중2

어느 날 중2병에 걸린 마흔 남성의 첫 발행 소감문

 회사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날 꼬나봤다. 더벅머리를 한 추레한 남자였다. 술에 취한 건지 눈이 빨갛고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잤는지 얼굴은 퉁퉁 부은 게 꼭 늘어진 물만두 같았다. 가르마는 이중 삼중으로 꼬여있고 머리칼은 어디는 눌리고 어디는 붕 뜬 것이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꼬인 가르마 사이로 빛나는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만두 좀비는 갑자기 얼굴을 앞으로 쓰윽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미용실에 가자..."


아오, 술 냄새. 그건 다름 아닌 거울 속 나였다. 그래, 미용실에 가자, 못 봐주겠으니까. 오늘은 꼭 머리라도 이쁘게 자르자. 그래야 사람 답지 않겠나. 만두처럼 부푼 볼때기를 양 손으로 감싸 쥐고 숙취로 띵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벅머리를 모자로 꾹꾹 눌러 감추고 퇴근길 미용실로 가는 지하철에 탑승했다. 노약자석 한편에 기대어 서서 나는 초조하게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새로고침하는 중이었다. 어젯밤 홀로 맥주를 마시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되던 안되던 빨리 결과를 받고 싶었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자 나는 뭐든 쓰고 싶어졌다. 혼자만의 비밀일기가 아닌 아무 누구라도 읽어줄 만한 글을. 속에는 쌓이는 게 많은데 출구가 없었다. 이러다간 어느 날 속이 뻥! 하고 터져버릴 게 분명했다. 소통과 교감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블로그를 만들고 글도 쓰고 사진도 올렸다. 글을 몇 개 써보니 재미도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읽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들어와 글을 읽고 댓글도 달아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어리석은 기대와 달리 방문자수는 연일 0명을 기록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나는 무인도에 홀로 표류해 정원을 가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꽃구경을 나올 사람도, 물을 줄 이도 없는 곳에서. 이 황량한 섬에서 나는 혼자 무얼 하는 걸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다들 SNS를 하는 걸까. 그걸 안 해서 내 소셜 네트워크가 이 모양인 걸까.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 별 거 없는 개인사를 노출하는 일에도, 원치 않는 타인의 허울을 봐야 하는 일에도 흥미가 없어 SNS를 멀리 해온 게 아닌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중 엊그제 처음으로 댓글 알림이 떴다.


블로그 포스팅을 너무 잘하세요. 저도 한 수 배워갑니다!^^ 제 블로그에도 방문해 주세요~~


낯선 블로거가 내 게시물을 칭찬하며 쌍따봉을 날린 게 아닌가. 흐뭇한 마음으로 나는 트리플 따봉을 날리리라 다짐하며 친절하기 그지없는 블로거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블로그 대문에 '코인으로 노후를 대비하세요!'라고 대문짝만 하게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가만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의 닉네임은 채굴러 어쩌고였다. 코인을 캐느라 글은 읽어보지도 않았을 게 뻔했다.


채굴러든 누구든 내가 심은 꽃의 향기를 제대로 맡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꽃을 심을 용기도 기운도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독자 없는 소설, 관객 없는 무대, 텅 빈 상영관에서 저 혼자 돌아가는 영사기... 그 뒤의 가련하고 무력한 창작자. 뭔가 수를 내야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블로그에 쓴 글이 검색되려면 구글과 네이버에 URL을 등록해야 한단다. 사이트맵을 제출하고 RSS를 등록하고... 하, 이게 다 무슨 소린가. 게다가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며 블로그 유입을 위해선 다른 블로그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댓글을 남기고 이웃도 맺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채굴러가 써먹은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결심이 섰다. 브런치로 이사 가기로.


성질이 급한 난 그렇게 혼술 중 충동적으로 작가 신청을 했다. 사진 올리고 글 쓰는 일이 익숙해지면 그때 가서야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할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무인도의 정원사로 머무를 순 없었다. 뭐라도 써보기로 했으니 접근성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읽힐 가능성이 더 높은 플랫폼으로 가는 게 합당했다. 작가 신청서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내 의식은 의지와 상관없이 달콤한 환상의 세계로 흘러 들어갔다. 내가 낸 책이 서점에 좌악 깔리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인터뷰를 하고, 설집이 세간에 오르내리다 영화로 만들어지더니 별안간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손아귀에 쥐는. 인과관계가 실종된 허망하고 괴한 상상.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여자와 순식간에 결혼과 육아, 백년해로에 대해 상상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민망한 망상이었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을 씰룩거리며 그렇게 어젯밤 일을 회상하던 그때, 진동이 연속으로 세 번인가 울린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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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통보. 스크 속에서 씰룩거리던 입을 쩍 벌리며 나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노약자석 기둥에 육중한 몸을 문대며. 뭔가에 합격한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크던 작던 타인의 인정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섬에서 고독히 말라가던 한송이 꽃에 떨어진 빗방울 한 점이 이리도 달콤할 줄이야.


곧이어 행복한 고민시작되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어젯밤 작가 신청 과정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야심 차게 쓰긴 했으나, 작가 신청 자체가 충동적이었기에 계획도 충동적으로 썼던 것이다. 일단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둔 글 몇 꼭지를 발행하면 되기야 하겠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앞으로 어떻게 연명해야 할까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미용실에 도착하자 사장님은 소파에 몸을 반쯤 뉘인 상태로 휴대폰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입술에 하얀 아이스크림 조각을 묻힌 사장님의 천진한 얼굴을 보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장님 브런치 아세요? 저 거기 작가 됐어요!'라고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그렇게 허물없는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태연하게 머리는 한 달 전 스타일로 해주시고 머리가 이리저리 눌린 것은 늦잠을 자 헐레벌떡 나오느라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가르마를 좀 더 오른쪽으로 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예의 그 섬세한 손길로 내 더벅머리를 넘기며 한 달 전 나눴던 대화의 익숙한 화제로 나를 이끌었다.


지저분하게 뻗친 머리가 하나 둘 정리됐다. 옆머리를 군인처럼 하얗게 밀었다. 티 나게 반짝이던 흰머리가 짧게 잘려나가자 왠지 더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니 호빵처럼 부풀었던 얼굴어느새 살짝 가라앉은 것 같았다. 흐리멍덩하던 눈빛엔 총기가 돌았다. 머리까지 감고 나니 확실히 새 출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오늘부로 작가로 새 출발합니다. 응원 부탁합니다. 하하하.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글이 하나도 써지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긴 경험도 내공도 실력도 없는데 처음부터 뭘 기대한 걸까. 첫술에 배부를까. 무작정 쓰는 수밖에. '작가'란 타이틀과 '발행'이란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엄습했다. 고매한 문예지에 등단한 작가도 아니면서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질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 아저씨에게 브런치 작가 합격이란 굉장한 이벤트라는 걸. 나는 '합격'하고 '통과'한 어엿한 브런치 작가인 것이다! 처음부터 대단한 무언가를 써내야 할 것만 같아 뭔가를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여전히 모르겠다. 마음이 붕 떠 써지는 게 없었다. 그래, 발행이야 급한 게 아니니 내일도 되고 모레도 되지 않나. 일단 자리에 누웠다. 잠들기 전 가족들 단톡방에 합격 메일을 캡처해 전송했다.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요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작가로 지원했는데 통과했어요ㅋ
아무나 쓰는 곳이 아니라 직접 쓴 글로 심사를 받아 통과하는 곳이에요
별 거 아니지만 기분 좋았네요ㅎㅎ 어여 주무세요


나는 직접 쓴 글로 당당히 통과한 거라고 대놓고 강조했다. 시를 쓰시는 엄마는 당신도 하고 싶다고, 아빠는 그저 계속 쓰거라 하셨다. 누나는 개인톡으로 브런치가 뭐냐고 물어왔다. 남들 같으면 꼴사납다며 손사래를 일도 가족들은 내게 호응과 힘을 준다.


기분이 좋았다. 이유가 뭘까. 내가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글로 쓰고, 그걸 누군가 알아봐 주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내 존재 이유고, 존재 자체고, 존재 증명이니까. 불과 며칠 전까지 나는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며 내 글 좀 봐달라고 중2병 환자처럼 굴지 않았던가. 나는 이 세상에 부재하지 않는다고, 미약하지만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지 않았던가.


과거 나는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뭔가 그럴듯한 글을 써보리라 다짐만 하다 방기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정확히 시도한 만큼 실패했다.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워낙 게으른 데다 뭔가를 하려면 뜸을 많이 들이는 스타일이었다. 독립영화 현장에서 조연출을 하던 시절 촬영감독 형이 말했다. 방구석 감독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로는 다들 영화를 찍겠다고, 찍을 거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계획만' 하는 방구석 감독들에 대하여.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데 그게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건 실제로 내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생각만 하다 적당히 포기하는 순간이 오면 종종 그 오싹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번만큼은 그 오싹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 세상 속을 살아가는 내가 유의미하며 내가 살아온 시절이 부질없진 않았다고, 시간은 가치 있었고 나는 이만큼 자라났다고 누구에게든 내보이고만 싶다.


이참에 복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무관심한 것.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제때 정리하지 못해 정체모를 물음표로 남아버린 복잡한 감정들을. 그래야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는 대로 살며 생각과 정리를 무기한 연장하다 빈 껍데기로 남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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