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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12. 2016

고맙다고 말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에 난폭, 요시다슈이치 (2014)


결혼한지 벌써 1년.

전에는 여자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집안일은 못참는 사람의 몫 - "이라고 했었더랬다. 

예컨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못보는 사람이 주우면 되는거고 설거지 쌓인거 못보는 사람이 하면 되는거라고.

(물론 그 못참는 사람이 나일줄은 그 때는 몰랐지만)


그래서 내가 설거지를 하고 머리카락을 주워야해서 화가 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설거지 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어찌할바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연신 고마워를 연발하게 된다. 


그런 때 있잖아. 

생색은 아닌데, 확실히, 인사 받으려고, 인정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마워 - " 한마디에 (있는 줄도 몰랐던) 갈증이 해소 되고, 감정이 충만해 지는 것.

그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고맙다고 말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_407p


원래 제목은 <사랑의 난폭>이었다고 한다. 

조어 하나의 차이로 미묘한 뉘앙스의 뒤틀림이 생긴다. 


<사랑의 난폭>이라면, 

사랑이 혹은 사랑의 한 단면이 난폭하단 말이 된다. 사랑의 난폭함, 사랑의 난폭성 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연인들이 얼마나 가여운지..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난폭한) 사랑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 안타까운 느낌.


<사랑에 난폭>은 어떠한가. 

누군가 사랑에 난폭하게 군다는 느낌이다. 좀 더 능동적인 느낌 이랄까.


예컨대 불륜으로 봤을때, 

<사랑의 난폭>은 어쩔 수 없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슴아픈 느낌이라면

<사랑에 난폭>은 불륜이면 어때, 나는 내 사랑이 소중해! 내 사랑이 진짜야! 하는 느낌.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이라는 거다.


제목과 시놉시스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지만,  역시 요시다 슈이치.

좋아, 이 소설을 막장으로 분류한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막장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특히 주인공 모모코의 변화.

이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화가 된다면, 나는 모모코 캐스팅에 아주 기대를 하게 될것 같다. 

초반의 모모코는, 아주 우아하고 깔끔하고 심플하게 보여지는데 

중반으로 갈수록, 헷갈린다. 

이 여자 뭐야싶게 히스테릭하고 정신병자같고, 결국 측은하다.


새어나온 자신의 목소리를 막아버리듯이 황급히 냉동실 문을 닫았다. _77p
이상한 척을 못하게 되었을때,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_387p


게다가 중간의 그 반전.

뭐지, 인쇄가 잘못됐나, 번역이 잘못됐나 싶어 앞장을 다시 봤더랬다. 

그렇지.

어째서 니 사랑만이 소중하다고, 유별나다고 생각해.

너의 8년전도, 그 여자의 8년 후도 결국은 같을 거야.


그런데 사실은, 모모코를 답답하게 여길게 아니라, 모모코나 나오를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사실 가장 난폭한 인간은 마모루씨잖아. 

연애에 있어서 가장 나쁜 인간, 고약한 인간. 

우유부단 + 현실도피의 전형적인 못난 놈.


그 사람 정말 고집이 없고, 조금이라도 싫은 일이 있으면
거기서 도망쳐서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즐거운 일만 시작해 버리거든요. _386p
생각하면 할수록 그 바보한테는 계획성이 없다. _387p


나의 사랑은, 

나의 결혼은 모모코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행복하게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는 것조차 사실은 상대방에는 난폭으로 느껴질지 몰라.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금성무(중경삼림 중)도 

언제가 그 만년으로 잡은 유효기간 후회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언젠가 끝이 있을 테니까

할수 있을 때, "고맙다"고 또 "고맙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아주 많이 말해두자.


PS1. 

믿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시자는 어쩔수 없는 시자라고, 

아무리 우리 애기, 우리 며느리 해도 결국 시자는 시자인것은, 일본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보다. 

시어머니 입에서 나온 '우리가족'과 '너'라는 말이 몇번이나 머릿속에서 되풀이 되었다. _330p


PS 2.

아주 옛날부터 생각했던 문제.

그럼 매주 여자가 있는 술집에 다니는 남편하고,
다른 여자와 플라토닉한 연애를 하는 남편 중 어느쪽이 좋아? _7p


PS 3.

이토록 여자의 세세한 감정과 기분을 잘 묘사하는 요시다 슈이치라는 남자와 

부부가 된다면 과연수월할까 피곤할까.


PS 4. 

요시다슈이치는 종종 남자 에쿠니가오리로 비견되는데, 

에쿠니가오리의 불륜소설 <도쿄타워>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도쿄타워>는 뭔가 양심의 가책과 로망이 뒤범벅되어 그래도 낭만적이었다면, 

요시다슈이치는 남자면서 오히려 더 후벼판단 말이지.                                      


#오늘의책 #요시다슈이치 #사랑에난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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