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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01. 2018

[일상단편] 안티호모이코노미쿠스의 불행

연말정산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그런 불행

2018.01.24 



 지난해 연말, 비과세 해외펀드니, 세제혜택이니 하는 재테크 열풍으로 사무실이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매년 연말 정산을 앞두고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기는 했지만, 올해는 더 유난이었다. 애당초 그런 것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며 결국 가입했으니 말 다했다. 매년 함께 여행을 다니는 친한 회사 동료 A가 그나마 나보다는 잘 알고 있어서 펀드 추천을 좀 받고, 자연히 주식이니 가상 화폐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부동산 투자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들의 회사는 삼성역 사거리 대로변에 있는데, 최근 들어 ‘천지개벽 수준의 영동대로 지하 개발!’이라는 플랜카드가 나붙었고, 실제로 회사 건물 바로 뒤편에선 H사의 오피스텔 2개 동 공사가 시작됐다. 다른 지역보다 비싸기야 하겠지만, 건물의 브랜드 가치나 교통 조건 등을 생각할 때,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매가가 억 소리 나게 비싸기는 했지만, 어차피 다 받는 대출, 조금 무리하더라도 올해에는 강남 한복판에 내 이름으로 등기를 치겠노라, 잔뜩 부풀어 올랐다. 

 

 다음날 회사동료의 부친상으로 원주에 다녀오는 길,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뭘 한참 조물 거리던 A가 기겁을 하기에 운전 중이던 나는 고속도로에 큰 사고가 난 줄로만 알았다. A는 은행 어플로 금리 계산 중 이었는데,  2억 8천만 원 대출에 이자율 5%를 가정해보니, 대략 한 달 100만원씩 30년을 갚아야 한다나?! 물론 상환금이나 대출 금리를 조절하면 30년 보다는 줄어들겠지만, 그래봐야 몇 년 빠진 30년일 텐데. 게다가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회사를 다닐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갚아나가지? 주변에서 하도 억억거리니까 억이 장난 같아 보였던 걸까. 나는 10년간의 사회생활동안 번 돈을 다 어디에 써버린 걸까. 


 뻥 뚫린 광주원주 고속도로 위에서 급격하게 김이 빠진 우리들은 갑자기 우리가 너무나 불행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들, 매년 발리며, 도쿄며, 해외로 놀러 다니면서, 부족함 없이 먹고 마시고 놀았잖아? 명품을 좋아하는 A는 집에 있는 가방 값만 어림잡아도 연봉의 행방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나 역시도 해보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을 아쉬움 없이 해오면서 꽤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돈, 돈 거리게 된 거지? 왜 갑자기 부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지? 


 “이게 다 김생민 때문이야.” 

 앞 차 후미 등에 들어온 빨간 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뭐에 홀린 마냥 ‘그뤠잇’이니 ‘스튜핏’이니 하면서, 천 원 한 장 쓰는 데에도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하니까 이 사단이 난거라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취미와 외식과 데이트를 줄여가며 6개월에 천만 원을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지나온 스무 번의 6개월을 후회하기보다는 김생민을 탓하는 편이 쉬웠다. 우리는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살 것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에게 투쟁 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연말에 가입했던 펀드의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자가 곧 능력인 이 시대, 마지막 안티-호모이코노미쿠스로 남을 과감한 결단이 없음에서 우리의 불행이 시작돼버리고 만 것이다. 



덧. 

A는 주식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6개월-천만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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