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ie#2 - 김지숙 여사님
ⓒVioleta Noy
아주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터뷰는 에디터의 업무 중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디터 지망생 시절부터 에디터로 활동한 동안 진행했던 인터뷰를 모아보려 한다. 거창하게 제목도 지었다. 'Project Goodie'. 굳이 이렇게까지 인터뷰 연습을 해야 하냐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굳이'를 따왔는데 영어 단어 구디는 “Goodie” refers to “something attractive or delectable.” 사람들의 마음을 끌거나 매력이 넘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정말 그렇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를 매우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어 이름으로 정했다.
그녀는 어머니다. 그녀는 내 친구의 어머니다. 길 위의 작고 유쾌한 철학가를 키워냈으며, 길 바닥의 낯선 딸내미를 거둬들였다. (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세계평화를 연구 중인 내 친구이며, 후자는 몇 주 전 거지 꼴로 귀국한 나다.) 그녀의 인터뷰는 8할이 두 딸 이야기였다. 틀림없는 어머니의 모습. 막걸리를 마시며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찰했다. 그녀의 장난기 서린 주근깨와, 두 눈에 담긴 당당한 에너지를. 그녀는 한 가정을 지켜내는 용맹한 전사이자, 기막힌 인생을 신명나게 살아내는 소녀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아우라가 내내 아른거렸다. 거친 파도를 넘으며 블랙 펄 호를 지키는, 허청허청 장난스럽게 한 얘기들이 삶을 담은 명대사가 되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우리의 캡틴 오 캡틴, 잭 스패로우.
55년생 김지숙
1955년생, 이름은 김 지숙. 대학 교수 아버지의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명문 중, 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학교 영어영문학과 84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녀가 60세가 되던 2015년, 전국이 MERS 난리통이던 해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전히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배우는 게 많아 만족스럽다고 한다.
밥상머리에서 대뜸 자기소개를 부탁드렸다. 그녀는 수줍어 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딸 둘의 엄마,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음." 소개를 끝낸 어머니는 생글생글한 눈으로 다음 질문을 기다리신다. 오히려 이 쪽에서 긴장이 된다. 늦게 준비하는 자격증 시험이 어렵진 않았냐는 질문에 "난 공부가 힘들었던 적이 없는데?". 또 내가 한 방 먹었다.
찌그러져 있을 필요, 없잖아?
어머니는 서울의 명문 여고를 졸업했다. 당시에도 학생들 하나하나의 인권이 존중되는 앞선 학교였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는 그 때부터일까. 어떤 경우에도 모든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하면서도 막상 나보다 센 사람 앞에서 주장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법을 묻자, 답은 간단하다. "다 같은 인간인데, 뭐 다르다고. 찌그러져 있을 필요, 없잖아?"
엄마사람
엄마로써의 역할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두 딸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는 엄마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잘 돌보아야한다는 막연하고 막막한 책임감에 짓눌려 지냈다고 한다. 자꾸만 그래도 좋았던 점을 뽑아달라는 요구에 이내 딸의 전교 석차를 든다. '잘 키우고 있나' 싶어 허둥거리다가도 자주 상을 타 오는 딸 덕에, 그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고.
“자랑스러워. 혼자서 씩씩하게 경험과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얘기들이. 나한테 돈 한 번 달라고 한 적이 없어. 큰 딸과 떨어져 지내니 당연히 보고싶기야 하지만 그 앤 그 애의 길을 걷는 거니까, 난 잘 가길 바랄 뿐. 내 시야가 넓어져서 좋아. 너희 또래나 외국 아이들 얘기를 들으면서, 삶을 여러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
딸의 친구라고 하지만 낯선 나를 흔쾌히 집으로 불렀다. 아침에는 손수 생딸기 우유까지 챙겨주신다. 대체 얼마나 배포가 큰 사람인가 감사하면서도 감탄했다. 단지 열심히 사는 불쌍한 애라고 들었을 뿐이라며 대답은 심플하다. 이내 이야기는 베트남에 있는 그녀의 딸로 이어진다. "아무 연고가 없는 땅에서, 내 딸이 베트남 사람 집에 신세를 졌어. 잘 돌봐주셨던 것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한 거지."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하느님 믿는 사람으로써 딸과 그 자식들이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길 생각하지. 재정적으로 늘 힘들었던 가정이 걱정이고. 내가 익힌 기술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 써먹으면서 돈을 벌어 두 딸에게 더 잘해주고 싶고.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고." 말 끝을 흐리나 했더니 이내 어머니는 생기가 넘친다. "난 60이 넘었어. 여기까지 오는 거? 잠깐이야. 인생 별 거 아니야."
두 딸을 비롯한 20대에게 김지숙 여사는 전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고? 당장 내일 아침도 네 미래야.
지금 이 순간도 어제의 내가 극진히 위하던 바로 그 미래야.
다 내 미래야. 돈이고 뭐고 쓰면서, 하고 싶은 거 지금 하면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