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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Dec 31. 2020

손이 작은 사람은 못 써.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을 보고 

    일요일 밤이면 돌아다니는 유명한 밈이 있다. 출근을 앞둔 스폰지밥의 노래 “월요일 좋아~” 다. 출근 준비를 하는 노란 스폰지 조각은 흥얼흥얼 몸을 씻고, 집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으며 월요일이 좋다고 노래한다. 그 뒤의 가사는 이렇다. 

“난 일할 때 제일 멋지지. 오늘부터 열심히 할거야. 오, 좋아. 최고로 좋아~” 

옆집에 사는 징징이는 스폰지밥의 소음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제발 좀 조용히 해! 월요일이 좋아서 난리 떠는 멍청이는 이 세상에서 너 뿐일 거야!” 그럼에도 스폰지밥은 일주일을 시작하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월요일이 좋다고 노래한다. 이 긍정적이고 바보 같을 정도로 낙천적인 스폰지의 인생은 매사가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스폰지밥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는 없었지만 한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월요병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가지 않게 되자 집에서 밥을 차려 먹는 날이 많아졌다. 카레를 한 솥 가득 해두고 김치와 간단히 끼니를 챙겼다. 하루는 같이 먹는 사람이 있어 두 세 가지 밑반찬을 접시에 꺼내 담았다. “야, 김치 좀 많이 놔. 이걸 누구 코에 붙여?” 큰 의미없이 툭 던진 친구의 말에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손이 작다. 키가 작아 손도 작은 거겠지만, 반찬도 조금씩 놓고, 마트에서도 물건을 조금씩 사고, 요리할 때 재료도 조금씩 넣을 뿐 아니라 대체로 모든 일에 넉넉하기보다 조금 모자란 편을 선택한다. 오죽하면 ‘조막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마침 성이 조 씨인데다 어린 아이만큼이나 손이 작다는 의미다. (조막손은 손가락이 없거나 오그라져셔 펴지 못하는 손을 뜻하는 것으로, 아이의 작은 손을 이를 때는 ‘고사리손’ 등의 표현이 적합하다.) 손이 크다는 말이 시원시원하고, 인심이 후한 사람을 이르는 칭찬이라면, 손이 작다는 말은 반대로 씀씀이가 작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흉이 될 것이다. “아니, 반찬 좀 넉넉하게 꺼내라고, 냉장고에 김치 많잖아.” 내 반응에 머쓱해진 친구가 덧붙였다.

    외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먹다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낫다’고. 손이 작으면 못 쓴다’고.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올 복도 다 달아난다’고. 먹다가 부족하면 당연히 더 꺼낼 작정이었는데, 졸지에 씀씀이가 작고 인색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벌게진 얼굴로 서둘러 반찬을 다시 꺼냈다. 적게 담은 반찬은 내가 그릇이 작은 사람,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닷속 귀여운 스폰지밥이 나오는 극장판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에는 예외적으로 절망에 잠긴 스폰지밥이 나온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해 온 스폰지밥은 그의 직장의 새로운 매니저를 발표하는 아침, 기대에 차 있다. 그 주인공이 자신일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장이 발표한 매니저 역할은 다른 직원, 징징이에게 갔고, 스폰지밥은 왜 자기가 매니저가 될 수 없는지 눈물을 머금고 사장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자리는 네가 맡기에 너무 어리다’는 답을 전달받는다. 월급을 받으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 그릇에 코를 파묻고 신나게 디저트를 즐기는 스폰지밥, 춤추는 땅콩 노래를 시도때도 없이 흥얼거리며 비눗방울을 부는 스폰지밥, 누가 조롱하는 것도 모르고 같이 웃던 스폰지밥은 결국 속이 상해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어느날, 가게의 레시피를 노리는 악역의 등장으로 사장이 얼음 덩어리가 되고, 누군가 왕관을 찾아오지 않으면 사장은 목숨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왕관을 가져오려면 악당들이 드글거리는 위험한 도시에 발을 들여야 하기에, 매니저나 가족 중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한다. (새로운 매니저 징징이는 월급을 줄 사장이 얼어버리자, 그 자리에서 퇴직서를 제출한다.) 모두가 두려움에 휩싸여 뒷걸음질치던 중,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은 건 스폰지밥과 그의 친구 뚱이다.


“저기 내려가면 우린 죽어. 네가 말했잖아. 여긴 어른들의 세계야. 인정하자. 우리는 그냥...애들이야.” 

“애들 아냐!”

“정신 차려! 우린 비눗방울을 불고 아이스크림을 먹어. 춤추는 땅콩을 좋아하고. 우린 여기서 못버텨.”

-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 중에서


    사람은 타고난 그릇이 있다고 한다. 그릇이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깊은 사람도 있다. 장난으로 한 말을 기억해 뒀다가 십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궁시렁대는 내 그릇은 아마 간장 종지만 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모험을 앞둔 스폰지밥이 사람들이 한 얘기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휩싸이자, 내 마음 역시 쪼그라들었다. 손도 그릇도 다 작으며 '애가 어려 뭘 모른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 나는 그의 마음이 잘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옆에서 보면 넌 참 매사에 열심인 것 같아. 작은 그릇을 타고 났는데 엄청나게 노력하는 그런 사람 같아.” 아마 그때도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아무리 채워 넣어 봤자 그릇이 작아 밖으로 다 흘러 넘치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소용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스스로를 돌아보지만,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손이 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전히 반찬은 옹기종기, 장바구니는 아기자기 했다. 월급이 늘지 않았는데 지출만 커지면 큰 일이 날 것만 같이 마음이 두근두근 불안했다. 남이 지나가듯 한 이야기들도 마음 한 구석에 꼬박꼬박 모셔 두었다. 모험이 없으면 새로운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작은 손을 가진 옹졸한 나는 크고 넓은 이야기를 평생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속상했다. 



"너희는 애들일지 모르지만, 왕관을 가져올 수 있는 건 너희들 뿐이야. 그러니 포기하면 안돼. 어린애면 어때? 어린 게 뭐가 나빠? 어린이 최고! 어려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네 힘을 믿어. 자신을 믿어봐!"

-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 중에서


    영화엔 움츠러든 스폰지밥의 마음을 활짝 펴 준 사람이 등장한다. 왕의 딸인 민디 공주다. 공주는 이 미션을 성공할 수 있도록 스폰지밥과 뚱이에게 어른이 되는 마법을 걸어 준다. 순식간에 덩치가 크고 용감한 어른이 된 둘은 왕관을 찾기 위해 씩씩하게 나선다. 그들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며, 길에서 마주하는 위험과 공포에도 게의치 않는다. 무시무시한 심해 생물도, 어둑어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도 어른으로 변신한 스폰지밥과 뚱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확하게 ‘손이 작은 건 나쁘다’고 말한 사람은 우리 외할머니밖에 없었다. 손이 작아도 내 힘을 믿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공주가 건 마법은 그저 길에 널린 해초를 따다가 코 아래에 수염처럼 붙여준 게 다였다. 그렇다면 나 역시 수염처럼 보일만한 것을 붙이면 될 일이 아닌가. 내 손이 작아서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억지로 씀씀이를 키우느라 불편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그저 가짜 손가락, 여의치 않다면 인조 손톱이라도 붙여보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인생을 가로막는다면, 까짓거 될 이유를 만들어내면 될 게 아닌가.

    한편 스폰지밥과 뚱이는 살인 청부업자에게 붙잡혀 콧수염 역할을 하던 해초를 뜯기고 만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이 여전히 어린아이임을 깨닫고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마주했을 때 단숨에 용기를 빼앗기고 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곧 물 밖으로 끌려간 둘은 햇볕에 바싹 말라가며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 말이 맞았어, 뚱이야.”

“우리가 매력적이란 거?”

“아니 우린 그냥 애야. 분수를 몰랐던 애들이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어. 우리를 봐. 왕관은 보지도 못했잖아. 모두를 실망시켰어. 우린 실패했어. 맞아, 셀 시티엔 가지도 못했지.”

-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 중에서 


    수분이 다 날아가 해쓱한 둘은 현실을 직시하고 마지막 눈물을 흘린다. 해맑게 닿을 수 없는 꿈을 꾸다가 현실을 마주하고서 절망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닮아 있어 덩달아 속이 상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 ‘노력했는데 왜 안 됐지?’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한 얘기를 떠올린다. 난 손이 작고, 손이 작은 사람은 역량이 부족해, 그러니까 그릇이 작은 나는 앞으로도 운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와 같은 흐름으로 빠르게 무너져 내린 나의 이야기와 닮아 있어 마음이 아팠다. 

    책 <태도의 말들>의 저자 엄지혜는 많은 유명인을 인터뷰하면서 귀 기울였던 태도의 한 마디, 또는 책에서 발견한 문장 중 혼자 보기 아까운 말을 책을 통해 남김없이 나눈다. 저자는 누군가를 인터뷰하려면 어떻게든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장점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어쩌면 당연한 이 이야기가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해초로 수염을 만들어 붙여 어른 흉내를 내거나 인조 손톱을 붙여 손이 큰 체 하지 않아도 가진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럭저럭 잘 살아나갈 수 있을 테니까.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만남이나 모임이 다 취소된 이 무렵이야말로 내가 될만한 장점을 샅샅이찾아보면 좋겠다. 책 <태도의 말들>에는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꼭 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자뻑은 제법 귀엽지 않을까? 내가 가진 특징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장점일 필요도 없다. 아니, 종종 못난 점이 더 귀여움의 포인트가 될 때도 있지 않은가!



“뚱이야 우리가 해냈어.”

“그런 것 같아”

“우린 얼간이었지만 결국 해냈어.”

- 영화 <보글보글 스폰지밥> 중에서 


    극적으로 미션을 마친 스폰지밥은 더 이상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자기 모습으로 살겠다고 말한다. 외모가 어른이 되더라도 마음 속의 자신은 그대로 테니, 이대로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당당히 외친다. “그래 난 애야!” 스폰지밥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함께 해방되었다. 신나게 일하러 가는 스폰지밥, 월요일이 두렵지 않은 스폰지밥, 길게 고민하는 일이 없이 그저 아이스크림 몇 그릇에 기분이 나아지는 스폰지밥은 매니저 일을 맡기고 싶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녀석임은 확실하다. 나 역시 넉넉하고 여유로운 캐릭터가 아닐 뿐, 오밀조밀 사랑스러운 다른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러 면모를 한 삶의 태도를 담은 책에서 저자가 끈질기게 본받을만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처럼 나 역시 끈덕지게 그럴듯한 내 태도를 찾아보려 한다. 다음 번엔 누가 내게 ‘왜 이렇게 조금씩 했냐’고 묻거든 단점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귀엽게 놓았을 뿐, 필요할 때 더 꺼낼 수 있다고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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