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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Jan 24. 2023

한겨울에 산에 오른다는 것

추워 죽겠는데 거길 왜..?



   추운 건 싫다. 옷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집 밖으로 나갈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주눅 든다. 어찌나 몸을 웅크렸는지 어깨가 결릴 지경이다. 몇 년 전 발가락이 동상이 걸린 다음에는 겨울이 오면 발가락부터 간지럽다. 등산은 힘들다. 추운데 밖에 나가 걷는 일도 고행인데 산을 오르다니. 혹독한 기울기에 종아리 근육이 땅긴다. 그 와중에 바닥은 제멋대로다. 자갈 위에서는 발목이 허덕이고, 지난가을 낙엽이라도 밟으면 몸이 푹 꺼진다. 흙바닥에서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얼음 바닥에서는 중심 잡기가 어렵다. 

  추운 것도 등산도 원하지 않는다면서 겨울 산은 매년 꾸역꾸역 찾아 오른다. 하산할 때까지만 해도 ‘젠장,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지.’ 생각하며 다시는 이 괴롭고 위험한 짓을 찾아 산에 오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전기장판 위로 복귀해서 보면 다음에 갈 산을 뒤지고 있다. 반복이다. 겨울 산을 오르는 게 대체 무슨 재미인가 싶어 한 번 더 겨울 산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겨울 등산용 장비를 하나둘 마련하고 장비가 아까워 다음 겨울에도 등산을 하게 된다. 세상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겨울 산을 오르는 이유를 꼽자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고, 웃기고, 이른 저녁부터 잠이 잘 와서다. 사진은 하얀 설산과 그에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기능성 방풍 재킷 덕이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얼어붙은 계곡을 걸으며 긴장한 마음을 풀기 위해서 웃음이 나오고, 낮에 많이 움직여서 밤에 잠이 잘 온다. 하루치 산행을 마치면 양껏 먹을 수 있다. 이 사실도 겨울 산행의 좋은 점이다. 겨울에는 체온 유지를 위한 열량 소모가 다른 계절보다 많다. 웬만큼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깡깡 얼어붙은 초코바, 식기 전에 후르르 먹는 수프, 대충 불려 먹는 매운 라면, 미지근한 물에 탄 커피 같은 건 산 위에서만 맛있다. 

  겨울 산 위에만 있는 게 또 있다. 자연에 고립되어 느끼는 자유다. 따뜻한 날씨의 산에서는 뭉그적거려도 된다. 긴 시간 천천히 행동식을 나눠 먹거나 넓적한 돌 위에 앉아 쉬어도 된다. 겨울은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 1분만 걷기를 멈춰도 견딜 수 없는 추위에 휩싸인다. 무리 지어 백패킹을 와도 상황은 비슷하다. 둥글게 모여 앉아 밥을 먹을 여유는 없다. 각자 텐트에서 간단하게 배만 채운다. 무엇보다 겨울 산에서는 휴대전화를 꺼내기 어렵다. 장갑을 낀 손은 휴대전화 화면과 불화하고 장갑을 벗자니 손가락이 시리다. 차가운 온도에서 배터리는 빠르게 소멸한다. 겨울 산에 오른 사람은 이런 식으로 고립된다. 그리고 이 불편은 세상에 자연과 자연 앞의 나만 남긴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이곳 정상에 오르면 자유와 신이 존재하며 저 밑에는 그 외의 혼란의 존재들이 혼란 속에서 살고 있다" 고 말했다. 혼란의 존재와 혼란의 SNS로부터 자발적 고립을 원한다면 겨울 산만한 곳이 없다.



  추운 게 싫어도 겨울은 좋을 수 있다. 삐질삐질 흐르는 땀과 함께 게으르게 퍼져 있는 편이 내게 더 맞지만 추운 날씨에 입에서 김을 훅훅 뿜으며 걷는 일은 또 기특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온갖 위험 요소에 걸려 넘어지던 나도 산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걷는다. 

  겨울 산의 마지막 장점을 꼽자면 이 일에는 아무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눈보라에 몇 시간을 걷던 내가 얻는 것은 ‘무’다. 산에서 발가락은 깨질 듯 시리다. 내뱉는 숨은 가쁘고 들이쉬는 숨은 얼어붙는다. 휘청이는 걸음 사이로 낭떠러지가 눈 더미에 조용히 감춰져 있어 몇 번의 고비를 겨우 넘어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면 남는 게 없다. 남은 체력도, 남은 하루도 없다. 그저 젖은 솜이 되어 빨려들듯 잠이 든다. 겨울 산행은 혼돈의 현대인이 가장 깊은 겨울잠에 드는 방법이다. 고요하고 평온한 새해를 빈다.


몽샵 매거진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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