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대답은 동일하다 네, 괜찮아요.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고 수용할 여력이 된다고 생각해서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수비 범위 안에서 막을 수 있어서 보통은 괜찮다고 넘겨버리는데 이게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사실은 괜찮지 않은 게 아닌 것은 아닌지 애매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괜찮다고 했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형과는 달리 시야에서 엄마가 사라져도 울지도 않고 불안해하거나 크게 놀라는 일도 없던 무던한 아이.
그래서 학원이나 어느 체험학습 단체 여행 같은 곳에 나를 홀로 보낼 때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이렇다. 학원에서였는지 소규모로 서울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억 속 장면은 조그만 승용차 뒷좌석.
나는 친하지도 않은 애들 사이에서 불안함과 멀미를 느끼다 구토를 한다. 실제로 했는지 구토감 만을 강하게 느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내가 사는 동네엔 성당이 없다. 부모님 때문에 당연하게 성당을 가야만 했던 당시의 나는 주일마다 성당에서 온 봉고차를 타고 옆 동네로 간다.
옆 동네 성당에 가서 다른 동네, 다른 학교를 다니는 애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머문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친분이 생기게 되지만 이방인이라는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다.
성당에서 복사를 돌아가며 하는데 어느 날, 복사를 하기로 한 친구가 성당에 못 오게 되어 나에게 물어봤다. 해줄 수 있냐고.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했고 그 이후의 일들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대충 이런 모습이다.
엄마가 근무하던 성당 사무실 안쪽 방으로 숨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던 내가 보인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지만 일단 차단하고 버틴다. 애초에 거절을 하면 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게 힘든 사람은 세상에 존재한다.
지금은 확실히 전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비슷한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품이 넓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에. 감당할만하니까 괜찮다. 물론 괜찮다 괜찮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니라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나를 돌보는 작업도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잠시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괜찮다, 크게 보면 큰 경향성으로 보자면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게 맞다. 그렇지만 작은 부분, 여러 디테일 사이에서 순간순간
여러 감정을 겪어 내야 하는 나도 실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할 순 없기에 순간순간 하루하루 무너지는 나 또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배제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속으로 욕을 하는 것이다. 응, 괜찮아 그렇긴 한데
욕이 나오긴 하네. 난 괜찮아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에 문득 튀어나오게 되는 나의 태도, 뉘앙스에 당신이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
괜찮지만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