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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Jan 24. 2023

난세의 시나리오


일주일 전, 목에 통증을 느끼며 이르게 눈을 뜬 나는 코로나와 감기의 중첩상태 그 불안감과 기대감의 중첩상태에서 신속항원검사라는 관측을 통해 감기라는 입자로 붕괴되었으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염려와 실재하는 컨디션 저조를 말미암아 설 연휴를 앞둔 목금 이틀의 근무를 휴무로 교체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수 개의 가능태 중 내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가능태를 가늠하는 것에 잠시 여력을 쏟았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이렇다. 코로나와 감기의 중첩상태의 염려와 컨디션 저조를 이유로 휴무를 얻어낸 이후 감기라는 입자로 붕괴되었지만 잠복기라는 가능성을 매개로 하여 본가에 내려가지 않을 이유를 도출해 내는 것. 나아가 결국엔 얕은 감기에 불과하여 설연휴가 시작하기 전 컨디션을 회복하고 나만의 휴일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내가 써 내려간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외부 환경의 변화로 인해 나의 시나리오가 일그러지기 시작하는데.. 더 보기





변기가 막혔다. 1층에서 막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아가 정화조에 문제가 생겨 공사가 필요하다는 것. 내가 있는 2층에서 물을 내리면 1층 변기를 통해 역류하기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것. 일단은 하루이틀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목에 통증은 거의 사라지고 지속된 관측에서도 감기라는 입자로 붕괴되었고 밖에서는 공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확신에 미리 끊어두었던 제주도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슬픔을 섞은 촉촉한 목소리로 엄마와 통화를 하고 바로 치킨을 시킨다. 막걸리와 조그만 와인을 사고 나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다음날, 볼일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1층에서 공사하던 설비 사장님의 통화소리가 들린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모든 기계를 동원하여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곧 설이기에 공사는 잠시 중단될 것이다. 날씨가 추워져 얼어있는가.. 마침 기온은 나날이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연휴 동안 매일 눈을 뜨면 카페로 출근한다. 매일 카페로 나아가 똥이 마렵기를 기다린다. 똥을 싸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싸고 집에 돌아와 머물다가도 약간의 신호가 느껴지면 불안감에 몸서리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라는 입자로 붕괴되었을 경우 나는 변기 없는 집에서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나. 어떻게든 밖으로 나돌아서 똥을 지렸겠지만 그것은 지금처럼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무던한 경우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코로나 발생 초기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나의 동선이 드러나 뭇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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