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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잔 Dec 20. 2017

연예인

빈소를 촬영한 영상을 보고

연예인은 죽음조차 소비되는 삶이다.

고인의 빈소에 누가 왔는지도 기사가 되고, 영상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팔려 나간다. 누가 왔다더라, 누가 오열을 했다더라, 누가 과거에 고인의 슬픔을 보고 이렇게 공감해줬더다더라.


고인을 좇아 다닌 (팬일지도 모르는 혹은 기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은 과도한 관심에 자아를 잃어버리고, 유리된 자신이 못견뎌 죽음을 선택한 그의 죽음조차 전시한다.


나 역시 진열된 고인의 죽음을 보며 이렇게 글로써 그의 죽음을 횡령한다. 연예인으로 새롭게 탄생한 "연예인 누구누구"는 살아서도 연예인이고 죽어서도 연예인이었다.


그가 그토록 마주하고 싶어했던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곳에서는 자기를 만나 간절히 바래왔던 행복으로 충만하길.


끝끝내 적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고인의 이름과 유서를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고, 시끄럽게구는 나 자신과 사람들을 보며, 아 그래서... 이래서... 하고 느낀 그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어서. 때문에 나는 당신의 죽음을 말하는 글에서 조차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기가 죄스럽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더 이상 가벼이 소모되질 않길 바라요.



나는 당신의 라디오를 종종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좋아서, 당신이 건내는 짤막한 위로가 좋아서. 그러니 죄송합니다. 나는 당신의 행복을 뺏아와 나의 '흉폭한 우울함'을 당신에게 밀어넣은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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