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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을 잘 한다는
정착된 의미는 무엇일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04.16

by 장석류

경영을 잘안다는 것, 경영을 잘한다는 것의 가정

조직문화와 의사결정 분야를 연구할 때, 기업에서 일하는 경영인과 정부에서 일하는 행정인을 상대로 인터뷰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경영을 잘한다는 의미와 행정을 잘 한다는 의미가 어떻게 정착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가 있었습니다. 기업에서 부장급 이상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OO님은 경력이 많이 쌓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제는 경영을 잘 안다고 생각하세요?” 보통 이 질문을 던지면, 자신만만한 대답도 들을 수 있었지만 대체로 “경험으로 쌓인 것은 많지만,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어 여전히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를 더 묻습니다. “20년 이상 업계에 계셨는데, 이제는 경영을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자의 대답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기대치를 충족’해야 잘 한다는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영을 잘한다는 의미는 ‘지속 가능하게’ 고객의 수요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값어치 있는 골(Goal)을 계속해서 넣어 이익을 남기고 ‘기업 가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런 가정을 하는 상태에서 “경영을 잘한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만나면 “예, 저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경영의 달인입니다. 경영 마스터입니다.”라는 얘기를 쉽게 꺼내진 못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분투하고 애쓴 얘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이며 골(Goal)을 넣었던 사례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행정을 잘안다는 것, 행정을 잘한다는 것의 가정

비슷한 질문을 정부 행정인이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행정인에게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최소 15년 차 이상 경력을 가진 중간 관리자급 이상 행정인에게 물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행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을 받은 행정인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대체로 대답 이전에 표정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행정을 잘 아냐고요?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내가 짬이 얼마나 되는데 당연히 행정을 잘 알지.’라는 독백이 표정에서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서 “이제는 어떤 업무를 맡아도 큰 두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행정을 잘 안다는 가정은 법규와 관례적 규칙을 준수하면서 가용 예산을 잘 집행할 수 있고, 상위조직과 감사 등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히 문제 소지가 없게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해당 전제에서 행정을 잘 한다는 의미는 패스와 슈팅을 통해 문제해결의 골(Goal)을 넣고, 고객이 필요한 가치를 만들겠다는 득점 역량보다는 문제 소지가 크게 없게 원만하게 공을 돌리며 실점을 최소화하는 수비 지향적인 특성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행정이 변하려면, 행정을 잘한다는 ‘가정의 변화’ 필요

행정 운영의 과정에서 파울이나 반칙이 없게 하는 것은 행정의 기본입니다. 물론 기본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을 갖추었다고 행정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행정의 영역에서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예산이 반영되어야 하고 정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는 ‘저출산 문제’ 해결처럼 정책을 수립했고 예산을 반영하여 집행했다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행정의 태도와 방식, 집행 행태의 실력이 문제해결 혹은 실패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책을 수립했고, 예산을 가져왔다는 것만으로 ‘행정을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투자를 유치했다고 ‘경영의 달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행정을 잘한다는 것의 핵심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실패를 겪는 영역에 필요한 공공재를 제대로 공급하는 것에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인 행정인에게 이어서 질문했습니다. “행정인으로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행정을 통해 문제해결의 골(Goal)을 넣었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행정을 잘 알고, 행정을 잘 한다’의 의미 기준의 가정이 바뀌면서 답변자의 태도도 변합니다. ‘행정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짜 행정을 잘 한다는 전제는 문제해결의 골(Goal)을 간절하게 두드리며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율과 형평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행정을 잘하는 것은 경영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문제해결의 골을 넣기 위한 전제와 태도

축구 경기에서도 어려운 강팀을 만나면 골(Goal)을 넣기 어렵습니다. 골은 어렵고 귀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골이 들어가면 환호합니다. 골을 넣기 위해서는 여러 슈팅을 시도해야 하고, 결정적인 슈팅을 만들기 위해 간절함의 태도를 가지고 협력해야 합니다. 행정에서 골을 넣기 위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골대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을 차고, 달리고 또 달려도 비전과 목표가 어디인지 모르면 헉헉대며 비 오듯 땀만 흘리게 됩니다. 많이 뛰었다고 골이 들어간 건 아닙니다. 스스로 ‘행정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은 3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급 행정인에게 물었습니다. “행정인으로서 당신의 골대는 무엇이었나요? 행정의 힘으로 당신이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와 비전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은 어떤 문제해결의 골(Goal)을 넣었나요?”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사람이 안다는 행정은 무엇인지, 얼마나 행정을 잘하는지 그 실력의 민낯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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