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05.14
상처 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 우리나라는 ‘화가 가득한 사회(Angry Society)’가 되었습니다. 대국적인 정치는 사라지고 자기중심적인 선악 구도에 갇힌 정치인들이 국민의 ‘사회 정서적 양극화’를 강화했고, 국민의 양극화는 다시 정치의 양극화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강 대 강 대치는 더 강한 타격을 주고받습니다. 상대를 배재하고 싶고,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고, 그것을 실행합니다. 복수의 굴레에 빠진 정치는 공공행정을 좀비화하면서 우리 사회와 국민의 화를 키우고, 화는 독이 되어 개인과 공동체를 흑화시킵니다. 상처 난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민의 사회 정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그간 한국의 민주주의 내러티브 위에서 ‘한류’라는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문화의 힘’이 사회적 문제를 완화해 주어야 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상처 난 민주주의와 사회 정서적 갈등, 오염된 미디어, 외로움과 고립감 등 당면한 문제가 가득합니다. 지난 40년 한국의 영화, 드라마, K-POP, 공연예술, 문학, 시각예술 등은 커져 온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다이내믹한 우리 사회와 다양한 개인의 삶을 반영한 수많은 작품을 창조해 왔습니다. 그 작품들은 건강한 공화국 시민이 생겨날 수 있게 영향을 주었고, 이제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언어를 넘어 보편성을 가진 공감을 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힘을 함께 먹으며 성장한 한국 문화의 힘은 이제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를 지키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지 않았던 한국 문화예술의 힘은 흑역사로 갈 수 있었던 계엄을 막는 백신이 되었고, 아스팔트 위에서 야광봉을 드는 K-문화의 힘은 K-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행정이 일하는 방식과 태도의 혁신, K-문화행정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어야 하는 이 시대에 한국 문화행정에 필요한 혁신은 무엇일까요? 한국 문화행정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부에 정착된 ‘수직적 관성’을 갖는 그립의 힘입니다. 몇 지점의 단면을 잘라보자면, 우선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면서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을 대했던 문화부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심사와 컨설팅이라는 무기로 만기친람하며, ’지역문화 정책의 팔길이 원칙’을 넘어 사업의 목적과 목표를 동형화시켰습니다. 덕분에 최근 문화도시 분야의 활기와 존재감이 크게 줄었습니다. 또 다른 단면은 문화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다양한 공공기관에 조직의 존재 이유에 맞는 정책 설계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실행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영평가 족쇄를 채웁니다. 이러한 낡은 관료주의와 상명하복의 일하는 방식은 형식에 갇힌 비효율과 집단적 무기력, 진짜 고객에 대한 무관심과 책임회피, 동기부여의 결핍과 일하는 사람들의 낮은 자존감을 연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행정 중간 조직도 그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3월에 발표했던 문화부 ’문화비전 2035‘의 수립 과정에서 분야별 전문가와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견을 요청받은 사람들은 ‘물어보니 의견은 냈지만’, 이 계획을 본인이 수립한 계획으로 생각할지는 의문입니다. 문화행정학자의 관점에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비전 원안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이를 실행하는 ‘관료주의의 수직적 행태’가 발표 과정에 듬뿍 묻으면서 혼란과 갈등을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관점과 태도로 발표하는 앞으로 10년의 비전을 한국 문화행정의 공동 주체인 광역·기초자치단체를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 공공기관과 예술인, 체육인, 관광인 부족(tribe)은 ‘우리의 비전’이라고 생각할까요? 자율과 책무는 만유인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스스로 ‘율(律)’을 선택하고 함께 비전을 수립한다고 느낄 때, 비전은 내 것이 되고 우리 것이 되어 진정성 있는 책무를 함께 나눠지게 됩니다. 정책이 밀실에서 내려오고,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느끼면 함께 할 동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문화는 특히나 다양하고, 지난 40년 동안 한국 문화도 크게 발전하면서 문화부 주도의 방식은 이제 한계에 왔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한국의 관료주의 문제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곳은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만나는 정부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대상을 만나온 행정인이 일하는 방식과 태도가 상대적으로 덜 관료화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6공화국이 출범하고 1990년 독립된 문화부처에 이어령 초대 장관이 임명된 지 35년이 지났습니다. 한국 문화행정도 한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왜 문화행정을 하는가?” 문화행정의 본령은 국민의 ‘삶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미래를 덮고 있는 ‘낡은 관료주의 외투’를 벗어내야 합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한국 문화행정에게 부여된 미션을 추구하기 위해, 비전을 향하기 위해, K-문화행정이 ‘항해하는 방식과 태도’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공론과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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