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09.24
인문학의 동시대성을 만드는 창의력
얼마 전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공연으로 올라간 창극 <심청>은 전문 평론가뿐 아니라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국립창극단은 <심청>을 홈그라운드인 국립극장에 올렸고, 표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공연 완성도에 관한 평과 관객이 느낀 만족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심청>이라는 작품이 동시대성을 가지기 위해 애쓴 창작진의 노고와 역량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예술 분야, 전통 창작 영역 등에서 기획자 그룹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 중에 동시대성(contemporary)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고전을 재해석해 작품 제작을 할 경우 ‘이 작품을 왜, 이 시대 관객이 봐야 할까?’라는 질문과 연계해 동시대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인문학의 동시대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속한 대학의 학부에는 ‘인문 문화예술 기획 연계전공’이라는 과정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전공에서 시작과 끝이 되는 수업을 맡아 ‘인문의 힘이 동시대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획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인문의 힘이 가진 독창성과 창의력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애덤 그랜트는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독창성의 가장 큰 특성은 현상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결심이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적 문제, 공동체 문제, 인간의 문제를 만났을 때, ‘인문의 힘’으로 그 문제를 마주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이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창의력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창의력은 ‘동시대를 사는 나와 우리를 궁금해하는 자세가 있는가?, 나와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 침묵, 결핍, 갈등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창의력은 지키고 싶은 게 있거나, 변화시키고 싶은 게 있을 때 강해집니다.
행정의 관성, 납작해지는 인문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 앞에서 행정 영역에서도 인문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책과 조직, 예산을 좀 더 체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도 ‘인문정신확산팀’이라는 부서가 독립적으로 생겼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행정은 인문의 동시대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이 영역의 중심에는 국공립 도서관 사서인 부족(tribe)이 있습니다. 사서인이 국공립 도서관에 오래 근무하게 되면, 행정인 직업정체성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연구와 강연의 시간에 국공립 도서관 사서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했습니다. ‘나의 직업정체성은 행정인인가요, 사서인인가요?’, ‘사서였던 행정인인가요, 행정을 아는 사서인가요?’. 이 질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건 선택 문제가 아니라, 균형을 설계하지 못한 도서관 행정의 구조와 조직문화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행정인 정체성이 강한 상태에서 인문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면 위험성이 있습니다. 행정의 문서는 관료주의에 영향을 받은 관용어구와 같은 전형적인 양식과 틀이 있습니다. 이 사고의 틀 안에서 묻지 않고, 답만 하는 생각의 근육이 강해지면 인문의 창의력이 점점 휘발되어 갑니다. 일시에 답하고, 장소에 답하고, 내용에 답하고, 강사 리스트에 답하고, 지출결의에 답하면 좋은 기획이 될까요? 답만 하다 보면 내가 이걸 왜 하는지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산출지표는 많지만,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었는지 잊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오랜 시간 붙잡혀 있게 되면 세상의 변화와 고객의 수요와는 떨어져 있는 인문의 갈라파고스에 갇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행정을 잘한다고 인문의 창의력이 살아있는 기획을 잘하는 것일까요?
횃불과 지팡이를 든 인문 기획자 × 좋은 행정인
행정의 관성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인문의 힘과 도서관의 힘이 동시대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결심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연민과 소명으로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 보는 것입니다. 최진석은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라고 했습니다. 질문은 기획서의 항목이 아니라, 관성을 돌파하는 실행의 행동입니다. 질문은 행정의 관행과 방어적 태도를 뚫고 나가는 힘이 됩니다. 좋은 인문 기획자는 어둠을 헤치며 ‘횃불’을 들고 질문하는 사람이고, 좋은 행정인은 ‘지팡이’를 들고 질문에 답할 사업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횃불이 길의 의미를 밝힌다면 지팡이는 우리를 끝까지 걸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횃불을 놓친 지팡이는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놓친 횃불은 넘어질 수 있습니다. 행정이 인문을 만났을 때, 좋은 행정은 ‘횃불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여기서 저기로 가는 ‘지팡이의 책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62
횃불의 질문과 지팡이의 질문으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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