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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이 예술을 창업과 만나게 하면 원하는 성과가 나올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10.22

by 장석류

예술가에게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기 시작한 행정

요즘 문화정책의 언어를 보면 낯설지 않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창업’이다. 예술인 창업지원, 창작기업 육성,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행정은 예술가에게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창작만으로는 부족하니, 스스로 수익모델을 만들고, 시장을 읽고 지속 가능한 경영 역량을 갖추라는 것이다. 경영이 기초예술을 만났을 때, 좋은 경영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필요한 ‘경영’을 현재 한국 ‘행정’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행정은 성과 측정이 어려운 기초예술 분야 창작지원을 하면서도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지 못한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 들어와서 정치·행정의 욕망은 세계 5대 문화강국, K컬처 300조 시대를 슬로건으로 세워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문화산업의 비전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초예술을 만나는 행정의 원칙과 뚝심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초예술의 성장과 지속 가능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행정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콘텐츠를 떠올리며 예술을 창업 혹은 기업가 정신과 만나게 하면 원하는 성과가 나올까?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예술의 자립을 위해 ‘예술창업’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제도 안에 세워왔다. ‘초기창업 지원’, ‘창업도약 지원’, ‘예술기업 성장지원’ 등 다양한 이름의 프로그램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예술가가 더 이상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역문화재단에서도 ‘창업’이라는 정책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하고 있다. 행정은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고, 창업지원은 유혹적인 프레임이다. 매출과 고용, 투자라는 수치로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를 기업가로 만들겠다는 의도는 원하는 성과와 이어질 수 있을까?


예술가 정신과 기업가 정신 ― 닮은 듯 다른 두 세계

스타트업은 생존의 불확실성을 가진 임시조직이다. VC(Venture Capital)가 투자하는 10개 회사 중 9개는 사라진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광역문화재단 등에서 예술창업을 지원한 회사 중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서 검증받아 시리즈A, 시리즈B 투자를 받은 곳이 있을까? 대체로 시드머니로 프로토 타입 과정에 있는 곳이 많고, 간혹 Pre-A를 경험한 곳이 있지만 예술의 힘을 강하게 사용하는 곳은 아니다. 기초예술 창업지원은 100개 중 99개가 사라지는 영역이다. 살아남는다는 의미는 비용을 상쇄할 만큼 수익을 만들거나, 성장세를 바탕으로 다음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순수예술 기반의 창업기업이 투자 단계로 성장한 사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이 기대하는 성과에서 창작지원과 창업지원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행정이 ‘좋은 예술’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에 관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부모의 기대에 맞춘 양육과 자녀가 원하는 삶에 힘을 보태는 건 다른 방식이다.


예술이 창조산업에 위치하면서 행정이 예술인에게 요구하는 마인드가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은 예술가 정신 DNA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를까? 예술가와 기업가는 모두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둘 다 실패를 감수하고, 스스로 위험을 떠안으며,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존재다. 이 점에서 예술가 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닮았다. 그러나 창작하는 것과 비즈니스를 하는 건 방향이 다르다. 예술은 내면의 진정성에서, 기업은 외부의 수요에서 출발한다. 예술인은 ‘느낌’과 ‘관계’의 언어로 말한다. 이 작업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가 그들의 질문이다. 반면 기업인은 문제와 기회의 언어로 말한다. 이 서비스가 어떤 불편을 해결할 것인가, 누가 이걸 구매할 것인가가 그들의 출발점이다. 기업가 정신과 예술가 정신은 지향하는 목표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성과의 정의 방식, 행위의 동기, 가치 판단의 기준, 의사결정의 양식 등이 다르다. 그래서 행정이 예술 지원의 목표를 ‘시장 진입’에 두는 순간, 예술의 세계는 자신의 언어를 잃을 수 있다.


(장석류) 예술인의 언어 vs 기업인의 언어 : 구조적 비교

행정은 예술가 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둘 다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측면에서 예술인은 행정인보다 기업가 정신을 더 가지고 있다. 오히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사람은 행정인일 수 있다. 예술의 지속 가능함을 위한 핵심 조건은 무엇일까? 행정이 가진 전제는 수익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보조금 지원의 무게를 덜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기초예술에서 수익이 있다고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예술인이 하는 진짜 투자는 내 시간이라는 자본, 내 인생을 던지는 것이다. 예술의 지속 가능함은 내 삶을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돈을 번다고 아무나 내 인생을 예술에 던지진 못한다.


예술을 창업으로 만나는 행정은 어떻게 변해야할까?

모든 오해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왜, 행정은 '창업'이라는 언어를 예술지원 체계에 가져왔을까? ‘창업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행정이 원하는 것은 다른 부처에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성과지만, 예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작업과 요구받는 창업 간의 인지부조화를 경험한다. “이제 당신도 수익을 내라.” “이제 당신의 예술을 시장에서 증명해야 한다.” 행정이 세워야 할 골대(목표)는 예술을 기업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예술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는 일, 예술가가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일, 그것이 행정이 넣어야 할 진짜 골이다. 경영이 고객의 욕망을 읽는 힘이라면, 행정은 공동체의 결핍을 읽는 힘이어야 한다. 창업을 행정의 편리한 언어로 쓰는 순간, 행정은 그 결핍을 외면하게 된다.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좋은 행정은 이 언어의 간극을 메우는 일에서 출발한다. 사업의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다. 그것은 행정의 세계관을 바꾸는 선언이다. ‘창업지원’이 아니라 ‘예술가 지속활동 지원’, ‘창작기업 육성’이 아니라 ‘예술생태 순환 프로그램’이라 부를 때, 정책은 경쟁이 아니라 순환, 성과가 아니라 지속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행정이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성과를 보는 눈을 바꾼다는 뜻이다. 숫자가 아니라 시간으로, 매출이 아니라 의미로, 결과가 아니라 관계로 정책을 측정한다는 뜻이다.


경영이 기초예술을 만났을 때, 좋은 경영이란 무엇일까? 그 경영을 지원하는 좋은 행정이란 무엇일까? 전환의 시대에 생각해 봐야 하는 지점이다. ‘행정을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을 잘한다는 것은 효율과 형평 사이의 균형을 세우는 일, 그리고 창작과 지속의 가치를 동시에 책임지는 일이다. 좋은 행정은 성과를 내는 행정이 아니라, 예술의 의미를 지켜내는 행정이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218

* 칼럼 지면이 제한적이어서, 본 글의 마지막 단락과 표. 예술인의 언어 vs 기업(창업)인의 언어 구조적 비교는 브런치에서만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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