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11.26
예술로 일하다 <예술 일자리 박람회>의 열기
얼마 전 코엑스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동 주관으로 열렸던 <2025 예술 일자리 박람회>에 특강 연사로 참여한 일이 있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전시 공간의 디자인, 조명, 부스의 콘텐츠가 아니었다. 예술로 살아가고 싶다는 20~30대 예술인들의 긴장, 불안, 기대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일 오픈 스테이지에서 했던 특강에는 젊은 예술인들이 가득했다. 단상을 내려오면서 ‘이 뜨거운 에너지가 어떻게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직업정체성이 다른 예술인과 기업인은 어떤 맥락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업가 정신과 예술가 정신은 어떤 일자리로 만나면 좋을까?
서로의 특성과 협력 가능성
특정 직업군의 행동 특성을 보면, 이면에 이 종족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정과 전제가 있다. 기업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전제는 세계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문제해결, 효율, 성과, 성장 등의 가치가 중요하고 의사결정 양식도 전략, 데이터, 분석 등의 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술인은 세계는 불완전하고 예술은 그 틈을 드러내는 행위로 전제하며 세계를 해석의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진정성, 의미, 관계, 표현 등의 가치가 중요하고 창작의 의사결정 양식도 직관, 감각, 관계 등의 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성향으로 기업인은 창의성을 말할 때도 문제해결이나 가치 창출의 언어를 사용하고 예술인은 성과를 말할 때도 의미, 관계, 경험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관성으로 기업인은 본질을 놓치거나 인간과의 진짜 소통에 실패할 때가 많고, 예술인은 창작의 지속 가능한 구조를 못 찾거나 사회와의 연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과 예술인의 이런 특성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협력의 가능성을 만든다.
예술가 정신이 기업가에게 건네는 것
기업가는 실현할 수 있는 답을 찾는다. 그러나 혁신은 ‘답’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질문’에서 출발한다. 예술가는 그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지금의 구조가 반드시 옳은가?”, “이 문제를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예술가의 질문력은 기업의 관성을 흔들 수 있다. 기업이 예술가와 만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다. 예술가는 여기서 저기로 ‘창작의 강’을 건너며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는 존재다. 매일의 작업은 실패 가능성 위에 서 있고, 그 실패를 견디는 감각이 곧 창의의 근육을 만든다.
계획되지 않은 우연,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성과로 보는 관점. 이것이야말로 예술가 정신이 기업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극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10년간 했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 사업을 분석해 보면 예술인이 가진 세상과 인간의 틈을 해석하는 힘을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인은 전략 언어는 취약할 수 있지만 문학, 시각, 음악, 움직임 등 인간과 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업이 브랜드 구축, 조직 철학 세우기, 수평적 리더십과 창의적 조직문화 학습, 멀리 있던 소비자를 참여자로 전환해 기업과 더 가깝게 소통하는 지점 등에서 예술인의 힘이 잘 활용되었다.
기업가 정신이 예술가에게 건네는 것
반대로 예술가도 기업가 정신에서 배울 점이 있다. 예술은 깊이를 만들지만, 때로는 그 깊이 안에 고립된다. 기업가는 가치를 세상과 연결하는 힘을 알고 있다. 예술이 사회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 예술이 어떤 구조 속에서 지속될 수 있는지를 설계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은 예술가에게 ‘지속의 구조’를 만들어주는 실천적 감각을 줄 수 있다. 예술가가 기업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자기 세계와 예술 작업의 본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더 오래, 더 넓게 이어가는 방법을 배우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는 협력의 감각
그러나 두 세계의 만남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기업이 예술을 성과의 수단으로만 다루거나, 예술가가 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채 자기 감수성과 예술성만 고집하면, 협력은 곧 피로로 변한다. 결국 예술가 정신과 기업가 정신의 만남은, 의미와 효용 사이의 새로운 좌표를 찾는 일이다. 예술인은 기업인에게 “너의 효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묻고, 기업인은 예술인에게 “너의 의미는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 질문이 오가는 순간, 협력은 진정한 대화가 된다. 좋은 협력은 닮음이 아니라 긴장에서 태어난다. 예술이 ‘왜’를 붙잡을 때 기업은 방향을 잃지 않고, 기업이 ‘어떻게’를 고민할 때 예술은 공허에 빠지지 않는다. 서로의 언어를 지우지 않고, 그 언어가 살아 있는 채로 같은 문장 안에 공존하는 것. 그것이 기업가 정신과 예술가 정신이 서로를 통해 더 깊고, 더 넓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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