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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문 Aug 09. 2023

프로가 된다는 것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기대했던 모습으로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를 보면 닐스 보어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테지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정의할 수 없는데 그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정말로 많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굵직한 실수 몇 가지를 알고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냐고 했지요."

프로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다. 각 분야마다 전문가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각기 다른 실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라면, 즉 프로라면 해서는 안 되는 실수도 분명 있다. 우리는 프로가 되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관대하기에 내가 프로가 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실수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 분야와 상관없이 프로가 되기 위해 피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취미로 발레를 배우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공연을 보러 가곤 한다. 가장 최근에 본 공연인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는 백조의 호수, 지젤 같은 전막 공연과 다르게 각 작품의 유명한 바리에이션들을 공연한다. 즉, 전체적인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매력과 기량을 감상하는 공연이다. 아직 발레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출연하는 무용수 중 대부분은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를 예매한 이유는 캐스팅 명단에 적힌 ‘다닐 심킨’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취미발레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발레리노인데 어떻게 춤을 추길래 그렇게 유명하고 팬이 많은지 궁금해서 직접 그의 무대를 보고 싶었다.

갈라 무대에 나온 무용수들은 모두 이미 프로 무용수이고 훌륭한 실력을 갖췄지만 다닐 심킨은 ‘클래스가 다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무대에 나오는 순간부터 무대를 나가는 순간까지 모든 움직임이 완벽했다. 갈라 무대에 선 모든 무용수는 훌륭한 기량을 갖췄지만 약간은 아쉬운 무대도 있었다.(원래 방구석 평론가의 눈이 더 까다로운 법이다.) 그러나 다닐 심킨은 달랐다. 그의 모든 밸런스, 모든 턴, 모든 동작이 완벽했고 마치 요정처럼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이미 삼십 대 중반의 무용수이다. 심사위원으로 온 콩쿨의 갈라 공연에서 선보인 무대가 다닐 심킨의 최고의 무대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완벽했다.

나는 다닐 심킨의 공연을 보며 그는 진정 프로라고 느꼈다. 나는 그의 수많은 공연 중 한 무대만을 봤을 뿐이다. 그의 무용 인생을 비디오로 만든다면 아마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늘 기복 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 프로이기에 내가 본 단 하나의 무대도 완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박예은 발레리나의 부상 소식을 접했다.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을 하던 중 부상을 당했는데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중족골이 완전히 부러진 상태였다. 9월에 박예은 발레리나 주역의 해적 공연을 보고 싶던 나로서는 상당히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는다고 하니 아마 당분간 그녀의 무대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발레리나지만 부상으로 인해 잠시 무대와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하게 됐다.

최근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인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 선수도 부상을 입었다. 그는 키움 히어로즈를 이끄는 주축 선수이자 KBO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이다. 이정후의 야구 실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현재 왼쪽 발목을 수술하고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 있는 상황이다. 그는 강한 복귀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회복까지 약 3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이번 시즌 내에 복귀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부상이 치명적인 이유는 프로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무용수를 위한 무대, 부상당한 선수를 위한 경기는 없다. 부상을 당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없겠지만 부상으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그렇기에 프로는 자신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반드시 건강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건 비단 육체 활동을 하는 무용수, 운동선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소하게는 전날 늦게 자서 다음 날 피곤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프로로서의 건강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웰빙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프로가 되기 위한 기초이기도 하다.

프로답다는 것을 과녁으로 나타내면 아래 그림 중 첫 번째 같을 것이다. 언제나 활을 쏠 준비가 되어 있고, 단 한 번도 ‘아차’하면서 쏘는 걸 놓친 화살이 없으면서도 기복 없이 자신의 실력을 뽐낸 최고의 과녁. 두 번째 과녁은 미처 쏘지 못한 화살은 없지만 자신에게 기대되는 기량을 늘 보여주지는 않는다. 세 번째 과녁은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지만 단 한 발밖에 쏘지 못했다.​​

1. 프로의 과녁 2. 기복이 심하면 프로가 아니다. 3. 실력은 좋지만 한 발만 쏠 수 있다면 프로가 아니다.


최근 내가 관찰한 프로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프로가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기대했던 모습으로.'



<영감을 받은 구절>


그러고는 과연 ‘전문가란 누구인가’라고 물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테지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정의할 수 없는데 그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정말로 많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굵직한 실수들 몇 가지를 알고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냐고 했지요.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중 닐스 보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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