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든 그걸 구성하는 요소를 잘게 쪼개가며 분석하길 좋아한다. 커다랗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만 그걸 구성하고 있는 작은 문제들을 푸는 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만족과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한 상태. 행복이 만족과 기쁨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라면 이 두 가지 요소를 극대화시키면 행복 역시 커질 것이다.
만족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특정 기준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오늘 나는 내가 행복하기로 선택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인 만족이 내가 정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어떻게 기준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의 상태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무작정 기준을 낮추는 것이 행복을 위한 최선의 길일까? 역치가 낮은 사람은 그저 그런 일을 마주해도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이 낮은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다행히도 행복을 이루는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기쁨이다. 만족은 내가 가진 기준의 충족 여부이기에 결과로써 측정된다. 그러나 기쁨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어렵고 높은 기준을 세우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마라톤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힘든 여정 끝에 결승선을 넘는 그 순간만 행복의 순간일까? 42.195km를 달리는 내내 아주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겠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기쁘게 달리지 않을까?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행복의 묘한 점은 행복들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적절한 기준을 세팅해 알맞은 만족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충분히 행복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나에 대한 남들의 기준이 너무 높을 때가 있다. 그들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기쁨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기쁨이라는 나의 행복에 만족이라는 타인의 행복이 영향을 주는 것이다. 행복이 온전히 내 안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란다면 우리는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방법이 때로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약간은 무관심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불행에도 내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가 만족과 기쁨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이 표현은 행복을 절반만 설명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행복의 강도와 빈도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강도 높은 만족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니 그 과정을 기쁨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고. 만족과 기쁨의 조합으로서의 행복을 생각해 보면 행복을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보다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행복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