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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r 30. 2024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하기


커리어를 다루는 책이나 강연에서 자주 접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해 보라"는 것. 마케터, MD, 개발자처럼 사회가 규정한 직무 말고 나만의 독보적인 관점으로 내 일을 이해하고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시작이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머릿속으로 내 일을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를 생각해 봤지만 바로 이거다! 싶은 정의는 없었다. 무엇이든 시작은 따라 하는 것부터다. 평소에 관심 갖고 지켜보던 직업인들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찾아봤다.



직업을 새롭게 만든 경우


김나이 |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채자영 | 스토리젠터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



직업을 새로운 언어로 설명한 경우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 |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

김나이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 일하는 사람들의 커리어 질문을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질문하는 사람.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 마음을 캐는 사람

박소연 시간과 생각 대표 | 일이 불행한데 삶이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수많은 직장인의 일하는 삶에 관해 관심이 많다.

최명화 블라썸미 대표 | 생각을 보여주는 사람

최혜진 에디터 | 잡음 속에서 신호를 찾는 사람





이들을 따라 만든 나의 정의 (2022년 포트폴리오)


나답게 사는(buy & live) 삶을 만드는 마케터

매일 읽고 쓰는 배움 수집가

나답게 일하고 성장하는 직업인



2022년 전에는 7년 차 마케터, 프로모션 담당자와 같은 사회가 정해둔 용어로 나와 내 일을 설명했다. 그 당시의 이력서와 비교하면 2022년 포트폴리오에 기재한 [나답게 사는 삶을 만드는 마케터] [매일 읽고 쓰는 배움 수집가] [나답게 일하고 성장하는 직업인]이라는 표현은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이 주제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해 보자는 생각이 다시 든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최근의 일이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엇나가기 마련이지만 이 예측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 말이다. 저성장 시대가 왔다는 것을 직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코로나 때 오히려 사회가 더 활기찼다. 금방 세상이 변할 것만 같았고, 매일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고, 모바일 IT 업계 성장세가 폭발적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고 투자 열기가 뜨거워져서 그때 처음 주식을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 때는 신생 IT 플랫폼 여기저기에서 강연과 프로젝트 협업 제안을 받았다. 그중 몇몇 플랫폼은 서비스를 종료했고 나머지 플랫폼도 사업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코로나 때 IT 스타트업 이직 열풍이 불었고 나도 그 바람을 타고 이직을 했지만 지금 이직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파이어족, N잡러,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저성장 시대에는 빠르게 돈을 버는 것보다 오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의 성장세 자체가 둔화되었고 이전보다 빠르게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줄었다.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 성장 그래프는 직선이 아닌 나선의 모양을 띤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법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최고의 답, 최적의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이 중요해진다.



오래 일하려면 지속 가능하고 나다운 일에 대한 관점을 먼저 세워야 한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남들의 시선 안에서 남들처럼 일하면 오래갈 수 없다. 도태되고 대체되는 것은 둘째 문제고 일단 그렇게 지속하기가 어렵다. 힘들게 애쓰면서 버티는 건 체력이 좋은 사회 초년생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지속 가능하고 나다운 일에 대한 관점이 있을까? 나에게 일이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자원을 확보하는 활동"이다. 회사를 12년째 다니면서 나는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일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회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특정 직무는 크게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을 통제할 수 없거나 일에서 내 강점을 살리기 어려운 환경은 견딜 수 없었다. 나에게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나답게 일할 수 있는가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 나답게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일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온전히 일을 장악할 때 나답게 일하고 있다고 느낀다. 일에서 나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고, 약점을 단점이 아닌 고유한 개성으로 이해받을 수 있을 때 자유롭게 일을 장악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강점과 약점 파악하기



강점이자 약점 1. 무엇이든 장점을 발견한다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하려면 우선 내 강점과  약점부터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직무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교육 운영 담당자로 일할 때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일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마케터로 일하면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영업 환경에 맞게 전술을 짜고 다양한 마케팅 액션과 히스토리로 최적화된 마케팅 시스템을 만드는 게 좋았다. 어떤 일이든 내가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쯤은 존재했다. 무엇이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 강점은 전문성이라는 기준 앞에서 자주 흔들렸다. 뭐든 적당히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에 빡! 꽂히지는 않는다는 거다. 나는 덕후 기질이 없다. 덕후 기질이 있어야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을 수 있는데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으니 하나에 집중해서 디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료 마케터 A는 모르는 트렌드가 없다. 새로 출시된 패션, 굿즈, 브랜드를 모두 꿰고 있고 입는 옷부터 책상 위에 놓인 소품들 하나하나 힙하고 트렌디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콘텐츠 제작자 B는 콘텐츠 덕후다. 예능을 보는 것, 분석하는 것, 만드는 것 모두 좋아하는 덕분에 덕업일치를 이루며 즐겁게 일한다.



강점이자 약점 2. 균형감과 통제감


뭐, 나에게 덕후 기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 나는 밀도 있게 좋아하지 않고 느슨하게 오래 꾸준히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해 티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차 산업에 종사할 만큼은 아니다. 열심히 번 돈으로 좋아하는 차를 사서 하루 한두 잔 마시는 것으로 충분하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늘 책과 노트를 끼고 살지만 작가나 에디터를 꿈꿀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하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늘 반 발짝 나의 밖으로 빠져나와 그 순간을 알아차리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지만 일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한다. 일에서 성과를 빠르게 내려는 조급한 마음에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한다. 취미를 다양하게 즐기지만 일에 쏟을 에너지는 남겨두려고 한다.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을 미리 계산해서 캘린더에 휴식 시간까지 확보해 둔다.


균형감은 나를 빠르게 성장시켜주지는 않았지만 [나다운 성장]과 [나다운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일에서의 균형 잡기는 [쉽게 하기]와 [시스템 구축하기]로 발전되었다.


[쉽게 하기]는 무리하지 않고 성과를 내야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계속 무리하며 일해야 한다면 성과가 나기 전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번아웃이 친구처럼 따라다닌다지만 [쉽게 하기]를 원칙으로 삼은 덕분에 번아웃을 심하게 겪은 적은 없었다. 애쓰지 않고 쉽게 일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귀찮아도 장기적으로 쉽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자동화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AI, 챗GPT, 엑셀 수식처럼 자동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을 계속 업데이트한다.


[쉽게 하기]에서 프로세스 효율화보다 중요한 것이 [바운더리 설정하기]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다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머리 위에 쌓인 일이 산더미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남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하루가 다 간다.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서부터는 차단할지 나만의 기준과 경계(바운더리)를 설정해야 한다. 한 번 설정한 기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저번에는 해주고 이번에는 안 해준다면 매번 안 해주는 것보다 더 비난을 받는다.


[시스템 구축하기]는 [단순화]와 [반복]으로 다시 나눠볼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일이라는 것도 하다 보면 큰 맥락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패턴을 발견해서 끝까지 단순화해야 한다. 나는 무엇이든 3가지로 정리될 때까지 단순화한다. 업무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머릿속에는 단 한 장의 업무 지도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이 지도를 나침반 삼아 시작하면 막막하지 않다. 패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정리와 기록을 집착적일 만큼 습관화해야 한다. 기록하고 - 정리하고 - 기록하고 - 정리하다 보면 핵심만 남는다. 그게 패턴이고 시스템이다. 


일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 일을 장악하고 통제한다.


누군가는 나의 일하는 방식을 이렇게 오해하기도 한다. "보수적이다."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한다." "기계적이다." "너 그러다 언젠가 한 번 크게 꺾인다." "공무원처럼 일한다."는 말도 들어봤다. 글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애를 쓰는 나의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강점이자 약점 3. 정성스럽게 마음을 쏟는다


고민하고 기록하고 기록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스템으로 만들면 그 일은 무엇이든 내 것으로 남는다. 열심히 스스로를 불태우며 일했지만 남는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굳이 애써서 정성스럽게 고민하고 기록하고 기록을 쌓아 패턴을 발견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기에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온전히 나에게 남았다고 느낀다. 일하면서 남긴 방대한 기록이 있고, 언제든 그 기록을 참고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둔 포트폴리오와 데이터 베이스가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서 만든 시스템이 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마인드맵이 나오고, 미팅이 끝나면 회의록이 나오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프로젝트 일지가 나오고, 한 해가 마무리되면 포트폴리오가 나온다.


"이건 내 분야지!" 환호하며 뛰어들만한 분야는 없지만, 어떤 일이든 나는 그 일 안에서 [나다움]을 발견하고야 만다. 아! 이거였어. 이거였다.


일에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이 글을 쓰며 몇 년 동안 찾지 못했던 [내 일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찾았다. 한번 생각 길이 열리니 문장들이 줄줄이 나왔다.


재즈가 아닌 왈츠를 추는 사람

반짝이는 즉흥 아이디어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주도하는 재능은 없지만 예측 가능한 왈츠의 1/3 박자를 반복하며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내 안의 좋은 것을 꺼내 쓰는 사람

외부의 트렌드나 정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느리지만 내 안에 쌓아둔 기록을 통해 최적의 답을 찾아낸다.




나라는 환경


누군가에게는 일과 삶에서 외부 환경이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나]라는 환경이다. 나는 [나]라는 환경을 매일 마주하며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강점이 지금도 강점인지 발견하고 이해하려고 정성을 다해 애쓴다. 세상 사람들은 미처 모르는 내면의 반짝임이 나에게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빛날 수 있는 조건을 밖에서 찾기보다는 내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마케팅 트렌드를 쫓지 않고도 한 가지 주제에 덕질하지 않고도 나다운 일을 찾을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할 시간에 그냥 주어진 일을 나답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마케팅 트렌드를 공부할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는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트렌드, 하나의 주제를 나와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지금까지 썼던 글의 주제들이 모두 연결된다.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기   

     기록으로 전문가 되기   

     좋아하는 것 말고 좋아 보이는 것 말고 내 안의 좋은 것 찾기   

     산이 이니라 삶 속에서 살아가기   

     성장과 균형 사이에서 중심 잡기   




일에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2024년에 만든 이 정의가 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내 일을 정의하고 나니 앞으로도 계속 무엇이든 나답게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사회 초년생 때 막연하게 꾼 꿈들이 있었다. 내 이름으로 책 출간하기, 주니어 사회인을 위한 강연하기, 안전하고 다정한 커뮤니티 만들기, SNS로 퍼스널 브랜딩 하기. 모두 이뤘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에게 물었다. 계속하고 싶다. 계속 책을 내는 작가이고 싶고, 계속 일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은 직업인이고 싶고, 밑미 커뮤니티를 계속 안전하고 다정하게 이끌고 싶고, SNS에 내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싶다.



계속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한동안 고민했다. 전문성? 유명세? 흥미를 유발하는 이력? 아니다. 계속하려면 계속해서 일에서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계속 내 이야기를 하려면 그 이야기를 할 [나만의 일]이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나만의 일을 하고 있어야 꾸준히 일과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나는 일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오래 일하기로 했다.



간간이 들어오는 강연이나 프로젝트 제안에 죄송스럽게도 거절 답장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는 내 이야기를 알리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쓸 때가 아니다. 일에서 승부를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키울 때다. 나를 충분히 키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는 알려지게 되어 있다. 어차피 모든 과정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나에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나답게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이 모든 과정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계속 나를 키우고, 기록하고,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적절히 타협도 하면서 나아가야겠다.



그때가 되면 무대 위에서 나를 이렇게 소개하겠다.

안녕하세요, 일에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제갈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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