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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pr 20. 2024

요청 사항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업무 템플릿]



반응 말고 대응


또 일터에서 신경질을 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횡설수설 협업을 요청하며 내 시간을 뺐는 유관부서 담당자를 볼 때마다, 무슨 내용인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대뜸 미팅부터 하자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화르르 화가 불타 오른다. 매번 감정적으로 흥분하며 즉각 반응하는 탓에 쉽게 풀릴 일을 어렵게 꼬이게 만드는 나를 고치고 싶다. 반복되는 분노 버튼 상황 앞에서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최근 몇 달간 3가지 훈련을 했었다. 



Slow Thinking

생각의 속도를 낮춰야 엉킨 생각이 풀린다. 빠르게 생각하다보면 압박감에 핵심을 놓친다. 업무 중간에 짧게 명상하는 루틴을 만든다. 업무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의식적으로 생각의 속도 낮춘다. 


요구사항 구조화

업무 요청 템플릿 만들어 배포한다. 보자마자 화가 나는 업무 요청은 대개 태도가 모호하고 내용이 무책임하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필요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전달받아야 한다. 필요한 항목을 작성할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고 양식에 맞추어 다시 업무를 요청해 달라고 한다. 상대가 템플릿 작성이 불가능한 긴박한 상황이라면 요구사항을 들으면서 직접 템플릿을 채워본다. 부정적인 감정에 가려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상대의 숨은 니즈와 핵심 목표, 쉬운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템플릿을 채우면서 찾는다.


모래시계 3분

Slow Thinking도, 구조화도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배려 없는 요구사항으로 짜증이 훅! 치밀 때는 두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 이 때는 일단 3분을 기다리자. 업무 중간에 명상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대개 그럴 여유가 없어서 더욱 짜증이 나는 상황일 테니 책상 위의 모래시계를 뒤집어 모래가 모두 내려올 때까지 3분을 기다린다.




위 3개 항목은 2023년 10월에 작성한 [회사 문제 해결] 아젠다이다. 오늘 이 3가지 원칙을 모두 잊어버리고 또다시 분노의 질주를 해버렸다. 팀장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라는 뉘앙스로 나에게 상황을 물었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 좀 쐬고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니 "그러게,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싶다. 앞으로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요구사항을 받는 상황은 반복될 거다. 그때마다 기껏 훈련한 것을 새하얗게 잊고 일터에서 짜증이나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템플릿 만들기


[요구 사항 구조화 템플릿]을 업데이트하고 구글 브라우저 북마크바에 연결해 두기로 했다.



Template

회사에서 요구사항을 들을 때
반응하지 않고 대응하는 법




템플릿 항목 살펴보기


불안은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무기로 철저히 준비하고 꼼꼼하게 실행한다. 실수를 반복할까 봐 업무 프로세스를 세분화/구조화/시스템화하면서 발전시키는 역량도 길렀다. 그러나 불안은 매번 중요한 순간에 나를 감정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애써 만든 업무 시스템이 불안과 조급함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다.


이 템플릿은 스트레스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을 위해 미리 만들어두는 답변이다. 잘 보이는 곳에 링크를 걸어두고 필요할 때 바로 꺼내서 매뉴얼화된 [대응 답변]을 하는 것이다.



1. 나의 대응을 선택할 수 있어



상대의 배려 없는 요구사항을 들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으.. 너무 싫은데 결국 해주게 되겠지. 그러면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일들은 모두 밀릴 거고,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고, 요가 수업도 취소해야 하고, 안 그래도 업무 압박감이 심해서 머리도 안 돌아가는데 저 요구사항은 어떻게 처리해 주지? 이렇게 숨도 못 쉬고 더블체크도 못하면서 일하다가 정말 사고 나는 거 아냐? 그럼 또 다 내 책임이겠지."


나의 불안은 성실하게도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내 앞에 대령한다.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정말 나는 결국 해주게 되는 걸까? 만약 꼭 들어줄 필요가 없다면? 바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면?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상대방의 핵심 니즈를 영리하게 파악해서 그것만 도와주면 의외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우선 당장 반응하지 말고 시간을 벌어서 숨 돌릴 틈을 확보한 후 요구 사항의 핵심을 분석하자. 내가 꼭 해줘야 하는 게 무엇일까? 언제까지만 해주면 되는 걸까?


 

2. 안심 첫마디로 시작하자



상대가 배려 없이 업무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경우, 대부분은 요청자의 심리적 불안감이 이미 큰 상태다. 아마 요청자 역시 상사나 클라이언트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전달받고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급한 마음에 달려왔을 것이다. "안 해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가득 안고서. 그러니 일단 그 불안과 걱정부터 줄여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비로소 이성적인 사고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속으로는 저 요청 까짓 거 안 들어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동시에 겉으로는 들어줄 테니 안 도와줄까 봐 어깃장 놓듯 무리한 요구하지 말고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라고 상대를 달래는 것이다.


  

3. 나의 Why 말고 상대방의 Why를 찾자


불안감에 판단력이 흐려진 상대에게서 [진짜 Why]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상사에게 보여주기 식의 액션 정도인지, 실제 지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지, 나의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답변인 것인지 (= 저 팀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라는 말을 상사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이 안 하는 게 아님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지) 캐치하는 작업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했듯이 상대에게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함께 펼쳐보면서 최악을 막기 위한 방법을 같이 고민하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4. 이야기 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꼭 안 해줘도 돼. 겁먹을 필요 없어.



상대방의 Why를 명확하게 찾았다면 내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3번에서 내가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들어주지 않는 것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면 이번에는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 본다. 


나에게도 필요한 요구사항인데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가?

→ 그렇다면 기존에 진행하던 것을 조정한다. 전체 업무 중에 무엇을 추가하고 무엇을 제외시킬지 상대와 협상한다. "A가 중요하다고 하셨으니 기존에 요청 주셨던 B는 이번에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이때는 상사와도 협상이 필요하다. OO팀에서 요청한 내용이 중요도가 높아서 B 업무는 진행을 미루겠다는 등의 조정을 논의해야 한다.


요구사항을 들어주든 안 들어주든 나/우리 팀/회사에 큰 도움도 위험도 없다면?

→ 진행 시점을 지연시키거나 판단을 보류한다. 더 중요도 높은 요구사항으로 발전될 때까지 기다린다.



(부록) 요구사항 분석하기



이 항목은 답변 템플릿이 아니라 [기록 템플릿]이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여기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기재하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지,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얻거나 잃게 되는지,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지 내용을 채우면서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을 확보하고 평점심을 되찾는 작업이다.



자, 이제는 실전 적용이 남았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이 템플릿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고 또다시 기록을 남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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