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아침 루틴을 반복한 지 1년이 넘었다. 물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하고 일기를 쓰면서 차를 마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똑같은 루틴 안에서 매일 새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오늘은 어떤 스트레칭 영상을 보지? 목이 유독 뻐근하네? 영상 보지 말고 목 마사지랑 어깨 스트레칭을 혼자 해보자!"
"악, 오늘 진짜 업무량이 많은 날이잖아! 향이 풍부한 자극적인 차는 마시지 말고 자주 먹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마셔야겠어."
같은 영상을 보며 스트레칭을 한다고 해도, 어떤 날은 엎드려 상반신을 위로 젖히는 스핑크스 자세에 집중할 때가 있고, 어떤 날은 햄스트링 근육을 쭉 늘리는 다운독 자세에 정성을 들인다. 이 수많은 선택은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 내 몸이 무거운지, 어디가 뻐근한지, 어제부터 이어온 고민이 있는지, 오늘 하루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등 길게 이어진 체크리스트를 머릿속으로 구성한 후 하나씩 빠르게 검토하면 오늘 나의 루틴을 구성할 세부 항목을 결정한다.
세부 루틴을 조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섞어 있어야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너무 바빠서 하루치 업무 만으로도 자극을 많이 받는 하루라면 익숙한 요가 영상과 익숙한 차를 선택한다. 이런 날에는 아침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평소보다 짧게 몸을 풀어주는 10분짜리 영상을 보고, 최근에 자주 마시며 할 일을 리스트업 한다. 차분하게 새로 산 차의 맛과 향을 즐기고 싶지만 어차피 머릿속으로 이미 엑셀 시트를 열고 있을 게 뻔하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낸 후 가뿐한 하루라면 기분 좋은 자극을 흠뻑 흡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가 채널에 새로 올라온 호흡 명상 영상을 보며 왼쪽 오른쪽 코로 번갈아 호흡하는 나디쇼다나 호흡법을 따라 해본다. 이런 날에는 신상 차를 개봉해야 한다. 차에 어울리는 차도구를 꺼내고 차 시음 노트를 펼친다. 찻물을 우리고, 뜨거운 물 안에서 춤을 추는 찻잎의 차무(tea dance)를 구경한다. 시음 노트에 이 차의 풍미를 기록한다. 코로 맡은 향기와 목으로 넘길 때의 향이 어떻게 다른지, 혀에 느껴지는 맛은 어떤지, 어떤 디저트와 잘 어울릴 것 같은지 한 모금 한 모금 뇌를 풀가동하며 탐구한다.
익숙함과 새로운의 균형
적절한 자극을 조절하는 균형
빽빽함과 느슨함 사이의 균형
균형은 정말 중요하다. 균형이 무너지면 아침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주도권을 시간에, 일에, 타인에 넘겨주게 된다. 균형을 잘 맞출 때 아이디어와 에너지도 샘솟는다. 너무 바쁠 때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몸과 마음, 뇌 에너지의 처리 용량은 무한하지 않으니까.
많은 작가들이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산책'이라고 답한다. 어떤 과학자는 샤워를 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비밀은 리듬과 빈틈에 있다. 우리는 스스로 '조절 가능한 상태'일 때 온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리듬은 안정감을 준다. 우는 아기를 흔들어 달래는 이유도 리듬에 있다. 책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에서는 리듬의 효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우리 자신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리듬과 활동을 하나하나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건 걷기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바느질이나 자전거 타기입니다. 누구나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거나 불안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 각자 선택하게 되는 활동이 있지요. 공통되는 요소는 리듬입니다. 리듬에는 조절하는 힘이 있어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브루스 페리 & 오프라 윈프리
리듬이 조절 효과를 가지려면 리듬 안에 반복과 규칙이 있어야 한다. 반복은 익숙하고 자극이 적다. 일이 많을 때는 의도적으로 익숙함과 적은 자극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하루를 설계해야 한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 루틴'에 균형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자극에 민감한 나는 지칠 때 극도로 자극을 제한하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만 먹거나, 길을 걸을 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마치 식사 명상이나 걷기 명상을 하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면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하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숟가락질, 걷기라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행위가 주는 리듬감이 나의 조절 능력 회복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이 리듬 덕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글감이 많이 떠오르는 상황이 있는데 바로 '15분 동안 머리 말릴 때'와 '잠들기 전 스트레칭할 때'다. 머리를 말리는 일은 아무 생각 없이 리드미컬하게 드라이어를 머리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며 반복하는 행위다. 폼롤러 위에서 몸을 좌우로 굴리는 잠들기 전 릴랙스 스트레칭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해결되지 않던 생각의 매듭이 스르르 풀리기도 하고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리 말릴 때와 스트레칭할 때는 꼭 옆에 노트를 놓아둔다.
아침 루틴 말고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점심 루틴이 있다. 20분 동네 산책이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아파트 단지를 크게 한 바퀴 빠르게 걷는다. 7년 넘게 매일 산책하는 아파트 단지라 조경도, 단지 구조도, 상가 풍경도 익숙하다. 걸을 때 다리 근육에 느껴지는 수축과 이완의 힘, 가슴으로 크게 들어왔다 나가는 숨을 느끼면서 걷는다. 동네 산책을 하면 팟캐스트 내용이 다른 때보다 잘 들린다. 익숙한 활동을 하며 적당히 여유로운 감각 자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가에 재미있어 보이는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팟캐스트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저기 카페 생기나 봐! 나무 콘셉트 인테리어인가? 멋있다. 다음에 저기 가서 커피 마셔봐야지. 디카페인 원두도 있으려나?"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나오면 그제야 팟캐스트 내용이 다시 머리로 들어오고 휴대폰을 꺼내 뒤로 돌아가기를 누른다. 멀티 태스킹은 신화에 불과하고, 사실 뇌는 한 번에 하나의 일만 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내 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순간이다.
'균형 잡기'는 에너지가 약한 나에게 중요한 키워드다. 얼마 전 나와 같은 MBTI를 가진 옆팀 동료에게 물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가족, 일, 취미 이런 키워드 중에서요."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 모든 것들의 균형이요."라고 답했다. 나도 똑같다.
중요한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잘 살펴보면 절대 그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다. 일에 올인하려면 우선 좋은 체력이 있어야 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한다. 정력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알고 보면 퇴근 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가족들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그 기반을 갖추기 위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의 균형'이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을 떠올려본다. 나의 하루는 그 모든 것들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설계도를 자세히 그릴수록 오히려 하루 안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하루의 상수를 나의 리듬 안에서 잘 조절하고 나니 하루의 변수를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