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실행하는 두어들을 위한 책 리드앤두와 기록을 주제로 인터뷰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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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이 단단한 행복을 이끈다'고 이야기하는 제갈명 님
Q. 기록을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흘러가는 것들을 기록으로 붙잡는 사람이에요. 원하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느냐가 기록과 메모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적고 정리해둔 것들이 그냥 흩어져버리지 않도록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기록이 물질화하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남더라고요.
Q. ‘맥락이 있는 기록’.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잘 보이는 이유가 있었네요.
기록의 형태를 고민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2년 전쯤 계기가 있었는데요, 밑미 리츄얼 메이커 활동 등 회사 밖에서도 다양한 자아로 활동하게 되었거든요.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려면 하루하루 일정을 잘 조율해야 했죠. 그래서 스케줄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또 그맘때쯤 곽정은 님의 다이어리 쓰는 법 소개 영상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어요. 핵심은 다이어리를 쓸 때 해야 할 일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 일을 했을 때 무엇을 얻게 될지에 집중해보라는 거였어요. 그동안 해둔 많은 메모가 다 어디 갔는지 알지 못해 아쉬웠던 터라, 필요할 때 꺼내서 써먹을 수 있는 기록법을 구축하기 시작한 거예요.
↗ 명 님이 채워온 기록들
Q. 지금 하고 있는 기록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예전에는 기록을 파트별로 나누었는데, 지금은 거의 하나로 통합했어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어서 무엇이든 데이터베이스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데이터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툴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더라고요. 일기를 제외한 기록은 구글 캘린더와 에버노트 등으로 옮겼어요. 처음에는 폴더별로 나눠서 정리했던 기록들이 조금씩 겹치고 합쳐지기 시작했어요. 하루를 채우는 루틴 안에서 이뤄지는 기록들이니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우선 현재 하고 있는 기록의 내용과 방법을 일상, 일, 취미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해볼게요!
하루 두 번의 일기 (with 수기 다이어리)
→ 일기장 왼쪽 페이지에는 아침 일기, 오른쪽 페이지에는 저녁 일기를 적어요.
1) 아침 일기
✓ 수면 기록: 수면의 양과 질을 체크하여 하루 컨디션을 조절
✓ Q1.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 Q2.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2) 저녁 일기
✓ Q1. 오늘 원하는 하루를 보냈어?
✓ Q2. 그럼에도 감사하는 일에는 뭐가 있어?
↗ 채소와 찻자리와 일기쓰기
[매일] 투두리스트 (with 구글 캘린더)
→ 시간 배분이 필요한 업무와 매일 반복되는 업무는 구글 캘린더에 소요 시간과 함께 고정/반복 세팅을 해둬요. 출근 후 구글 캘린더를 켜면 그날 해야 할 일이 큰 틀로 잡혀 있죠. 그리고 노션에는 까먹으면 안 되는 메모를 유형별로 정리해둡니다. 노션 메모들은 출근 직후와 퇴근 직전에 다시 보면서 상황에 맞게 정리해요. 구글 캘린더는 투두리스트, 노션은 메모장으로 활용하는 셈이죠.
[주간] 프로젝트 일기 (with 노션)
→ ‘프로젝트의 진도가 안 나가는데 어떻게 하지?’ ‘새 프로젝트 시작할 때의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지?’ 등 프로젝트 단위로 생기는 고민을 따로 모아 기록해둬요. 금요일마다 프로젝트 일기 속 고민을 한번에 체크해서 해결 방법을 찾고 다음주 업무에 적용합니다.
[랜덤] 커리어 고민 노트 (with 노션)
→ ‘이 일이 맞나?’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하는 묵직한 고민이 찾아올 때면 커리어 고민 노트를 꺼내요. 보통 1년에 두 번 정도 이 노트 앞에 앉게 되는 거 같네요.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고, 나에게 중요한 일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등 본질적 고민들을 쭉 적어봅니다. 그 히스토리를 통해서 회사 생활을 나답게 하기 위한 업무 방식과 환경을 개선해왔어요.
↗ 회사 업무에 대한 고민을 기록하는 노션
↗ 시간 단위로 기록하는 구글 캘린더
베이킹 레시피 (with 에버노트)
→ 오늘의 레시피를 다음에 또 사용하기 위한 기록이에요. 베이킹에서는 레시피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레시피와 함께 ‘이렇게 만들면 더 맛있을 것 같아’와 같은 보완 방향을 적어둬요.
차 시음 노트 (with 수기 다이어리 & 에버노트)
→ 향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 ‘어떤 차를 마셨는데 산뜻함이 강하고 약간 포도 향이 났어’와 같은 느낌을 적어두면, 다음에 비슷한 차를 마셨을 때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서 더 디테일하게 취향을 발견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물리적 활동을 거치면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손으로 적었어요. 차 패키지를 붙여 시각 정보도 추가했고요. 요즘은 계절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차 취향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아서 디지털 기록으로 데이터를 쌓고 있어요.
독서 기록 (with 엑스 마인드)
→ 밑줄 필사를 오래 해왔는데 기억 잔존율이 너무 낮더라고요. 어느 책에서 마인드맵 형식이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생화학적 구조와 가장 일치한다는 걸 읽고, 독서 기록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어플을 이용해보며 시행착오 끝에 ‘엑스 마인드’에 정착했습니다.
마인드맵으로 주요 키워드들을 정리해두면 특히 병렬식 독서를 할 때 유용해요. 중간에 읽다 만 책을 한참 후 다시 펴야 할 때 마인드맵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10분 만에 이전에 읽었던 내용이 다시 살아나요.
하지만 문장이 아름다운 책은 여전히 손글씨로 필사를 하고, 만화책 등 재미로 읽는 책은 따로 기록하지 않고 그냥 읽기도 합니다.
↗ 독서 기록을 모아둔 에버노트
↗ 차 시음 노트
Q. 루틴화된 기록 패턴을 얼마냐 이행하느냐에 따라 명 님의 하루 만족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살아갈 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꾸준히 하는 '아쉬탕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아쉬탕가 요가는 정해진 동작 순서를 따르는 특징이 있는데, 이 동작 다음에 어떤 동작이 올지를 알고 있는 데서 안정감을 느껴요. 반복 과정에서 어제와 오늘의 미세한 차이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매일 같은 루틴으로 진행하는 기록도 이와 비슷한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Q. 현재 루틴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여러 시도를 1년 정도 지속하면서 제 일상에 맞는 루틴을 가지게 되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거나 양식을 바꿔보고, 툴도 이것저것 써보았지만 결국에는 유효한 것만 남더라고요. 원래는 아침, 저녁 일기에 고정 질문도 7개씩 있었어요. 특히 저는 기록하는 게 많아서 하나하나가 복잡해지면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최대한 가지치기를 한 결과, 지금의 루틴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Q. 기록의 루틴화는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으로도 이어질 거 같아요.
하루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데서 도움을 받는 거 같아요. 현재 하는 기록은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록’과 ‘나에 대한 기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그중 ‘해야 할 일 기록’은 해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획을 잡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저는 휴일에 일정 시간 이상 혼자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걸 이해하고 스케줄표에 휴식 시간을 미리 고정해두면 마음이 앞서서 무리하게 잡은 일정 때문에 후회할 일이 없죠. 정말 좋아하는 것,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하면서 삶의 기준도 명확해지고요.
그리고 ‘나 기록’의 장점은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 퇴근 후 멍하니 유튜브만 보고 있는 날이 있는데,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니 특히 에너지 소진이 많은 날에 그렇더라고요. 패턴을 알고 나면 조금 더 신경 써서 시간을 설계할 수 있어요. 회의가 많았거나 회식이 있는 날에는 ‘집에 가면 일단 씻고 명상부터 하자’는 식으로요.
↗ 명 님이 취향껏 꾸민 서재의 모습
Q. 자신만 보는 일기에도 무얼 써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나요?
일기에도 편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의미 있는 내용들을 선별하여 하루를 기억하거나, ‘나의 하루는 좋았어!’ ‘나 되게 컨디션 좋잖아!’ ‘요즘 일 열심히 잘하고 있어!’와 같은 선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는 거죠. 그런 말에는 일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주문을 거는 선언 효과가 있어요. 또 저처럼 일기 템플릿을 만드는 방법도 있어요. 유튜브에 찾아보면 일기 질문 리스트가 많이 나오니까 그중 원하는 걸 골라도 좋고요.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날도 정해진 질문들을 맥락 삼아서 기록하면 일기가 그저 데스노트에 머물지 않을 수 있어요.
Q. 기록 도구로써 SNS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SNS는 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도구예요. 오리지널 콘텐츠를 SNS별 특징에 맞게 편집해서 올리고 있어요. SNS마다 매체 특성과 그곳에서 머무는 사람들의 특징이 다 다르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가장 빠른 반응을, 브런치는 소수에게 깊이 있는 반응을 얻을 수 있죠. 블로그는 검색 기능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알릴 수 있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는 상사에게 업무 결과를 보고하듯이 정보를 요약하고 이모지를 달거나 문단을 정리해서 핵심을 보기 좋게 정리해요. 그리고 브런치에서는 제가 가진 생각과 인사이트에 집중해서 보여주고, 블로그에서는 유용한 정보가 두드러지도록 편집합니다.
Q. 기록을 꾸준히 쌓아서 결과물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록 생활에 어떤 장치를 마련하는 게 좋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기록을 데이터화하는 게 중요해요. 데이터화에는 맥락과 템플릿이 필요하고요. 우선 기록의 기준, 쉽게 말하면 기록의 콘셉트를 세워요. 예를 들어 채소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한 가지 채소로 일주일 요리하기’ 같은 주제로 포맷을 잡는 거죠. 그다음으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어떤 템플릿이 어울릴지 고민해야 해요. 한 가지 채소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어떤 구조로 보여주면 좋을지, 사진과 글은 어떤 형식으로 정리할지, 그 형식에는 어떤 매체가 알맞을지 찾는 거죠. 템플릿이 정해져 있어야 결과물을 축적하기에도 좋아요.
인터뷰를 하기 전, 명 님이 하시는 다방면의 기록에 대해 모두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질문을 준비한 게 아닌지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명 님은 사전에 전해드린 질문들을 본 후 하고 싶은 말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해 오셨더라고요. 덕분에 대화가 길을 잃지 않고 순항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두서없이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명 님의 마인드맵을 보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앞으로 마인드맵을 이용해 생각과 감정을 구조화하는 연습을 해보려고요. 하고 싶은 말을 잘 가다듬어 명중시키듯 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