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책장을 뒤로하고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나는 내 삶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짐을 싣기 시작할 땐, 아무리 많아도 10톤 트럭 한 대면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삿짐센터 직원이 내게 말했다. “사장님, 이건 15톤짜리 이상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비용도 비용이어지만 도대체 내 삶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언제부터 쌓여 있었을까하는 후회하는 마음이 컸다. 방마다 가득한 책장, 벽을 가득 메운 책 더미, 한참 동안 열어보지 않은 상자들. 나는 그날, 내 집 안에 쌓인 것들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어떤 집착과 두려움, 그리고 내 불안의 무게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삿짐 트럭에 실린 박스들을 멀거니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안에 든 것은 단순히 종이와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나를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방패였고,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었으며, 내 존재의 증거였다. 나는 그 책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려 했고, 내 안의 허전함을 감추고자 했다. 책이 많을수록 내가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 그러나 막상 그 무게로 허리가 휘어질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오히려 나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나는 요즘, 자주 내 서재 한가운데 멈춰 서곤 한다. 벽마다 높이 쌓인 책장에는 책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고, 그 위로도 수직으로 포개어진 책들이 천장 가까이까지 솟아 있다. 문틈에도, 의자 옆에도, 심지어 침대 머리맡까지도 책이 차지한 지 오래다. 마치 내 삶의 한 시기가 책으로 응고되어 실체화된 것 같았다. 한때는 이 많은 책들이 나를 지켜주는 성벽 같았다. 책을 산다는 건 단순히 소비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더 확장하고, 깊게 만들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기꺼이 이 책들의 무게를 짊어졌고,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라 믿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 믿음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처럼 둘러싼 책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자유로워지기보다 오히려 갇히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내가 책들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책들이 나를 점령해 버린 것처럼.
처음에는 아주 소박한 마음이었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내 안의 어떤 세포를 흔들어 깨웠고, 나는 그 감동을 오래 곁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첫 책을 샀고, 그 책을 위해 책장이 필요해졌고, 책장이 채워지자 새로운 책장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반복된 채움과 덧셈의 과정이 지금의 서재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 풍경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풍요롭고 지적인 삶의 상징처럼 보일 테니까. 나도 한때 그랬다. 책의 수가 곧 지성의 깊이라고 믿었고, 많이 읽고 많이 소유하는 것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길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많은 책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고요한 안도감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을 느꼈다. 손끝에 닿는 모든 곳에 책이 있음에도, 정작 내가 손을 뻗고 싶은 어떤 것은 부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건 물리적인 공백이 아니라 마음속의 틈이었다.
책 한 권을 들여오는 일은 항상 작은 의식을 동반했다. 포장지를 벗기고, 종이 냄새를 맡고, 책 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릴 때마다 왠지 모를 위안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기대. 그러나 그런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책을 읽고, 덮고, 책장에 꽂고 나면 어느새 그 감정은 증발했다. 나는 다시 또 다른 책을 검색했고, 서점에 들렀고, 알람을 맞춰 예약구매를 했다. 그렇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메우듯, 나는 책을 소비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책 그 자체가 아니었음을. 나는 그저 어떤 불안을 잠시 잊고 싶었던 것이었고, 책은 그것을 잠시 감춰주는 가림막이었을 뿐이었다. 책을 향한 애정이라 믿었던 감정은 어쩌면 위장된 결핍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적게 필요할까. 머리 위에 따뜻한 지붕이 있고, 식탁 위에 따뜻한 밥이 놓여 있고, 공기 좋은 날 창을 열면 바람이 흘러들어오는 집. 햇살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는 여유. 사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왜, 그 단순함을 스스로 멀리하며 살아왔던 걸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은 과연 누구에게서 비롯된 걸까. 내 안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일까. 나는 무엇을 쫓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까. 이 책들 속에 과연 내 진짜 욕망은 있었던가.
어느 날은 책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런 상상을 했다. 만약 이 모든 책이 사라지고, 다만 열 권 정도만 곁에 남는다면 어떨까. 그 열 권은 내가 정말 여러 번 읽고, 다시 펼칠 때마다 새로움이 있는 그런 책들이겠지. 그리고 더는 책장이 빽빽하지 않은 서재, 벽 한쪽에 여백이 남아 있는 공간. 그 공간에는 햇살이 들고, 바람이 드나들고, 고요한 음악이 흘러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상상을 하고도 잠시 멍하니 그 앞에 서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그 장면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많음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어떤 평온, 어떤 진심, 어떤 단순한 감정. 그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놓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내가 책을 읽으며 처음에 느꼈던 그 떨림과도 통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가득한 이 방은 이제 내 안의 풍경과 꼭 닮았다. 빼곡하고, 무겁고, 차마 버리지 못한 감정과 기억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다시 또 찾으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이 방의 벽 하나쯤은 비워내고 싶다. 더는 꽂을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어 있음의 고요함이 내게 필요해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제는 책장 바깥의 삶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 고요함 속에서 살아가는 법, 적게 갖고 깊이 누리는 법, 감사하는 법. 어쩌면 그게 진짜 공부일지도 모른다. 진짜 앎은 어쩌면 책장 속이 아니라, 책장을 덮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그렇게 서재 한가운데 서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보면, 나는 또 다른 생각에 닿는다. 책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히는 이 방에서 나는 문득,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믿는 책을 깊이 되풀이해 읽는 삶이 더 값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는 안다. 좋은 책 한 권이 수십 권의 새로운 책 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달라진 나를 만나는 일이다.
첫 번째 읽을 땐 스쳐 지나간 문장이, 두 번째에는 나를 붙잡고 흔들고, 세 번째에는 눈물을 불러오고, 네 번째에는 미소를 짓게 한다. 좋은 책은 내 안에 쌓인 시간을 통과해 나를 다시 만나게 해 준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좋은 책은 수없이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일찍 일어나 서재 한가운데에 선다. 이제는 수많은 책의 무게를 벗어나,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한 권의 책을 꺼낸다. 그리고 안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깊이 읽고, 다시 읽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진짜 기쁨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