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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매거진 Apr 28. 2019

작은 우주로의 초대

“오늘도 우주는 열려 있습니다.”


불광천이 지나는 길가 한 편에 ‘우주’라는 곳이 있습니다. 목조 출입구가 눈에 띄는 이 공간의 내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우주를 운영하는 김한주 대표를 만나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유년기를 함께 해 온 친구 간의 진솔한 대화이기에 더욱 특별했던 시간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Q. (김종소리, 이하 동일) 우주를 소개해줘.

A. (김한주 대표, 이하 동일) 술집이야. ‘소고기 숯불구이집’이나 ‘이자카야’, ‘선술집’처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진 않으려고 해. 주메뉴는 소고기. 오븐 요리도 있고. 술은 소주, 맥주. 주력으로는 포트와인이 있어. 포르투갈 와인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와인보다 도수가 높고 단맛이 강해. 버번위스키도 두 종류 있고. 위스키는 잘 모르는데, 친구가 소고기랑 달콤한 위스키가 어울릴 것 같다며 추천해줬어. 그런데 메뉴는 언제든 수정할 수 있어서 그냥 ‘술집’이 가장 맞는 소개일 것 같아. 내가 정한 술과 안주를 판매하는 ‘술집’. 아마도 소고기는 계속 팔 것 같지만.



Q. 술집을 연 이유는?

A. 어렸을 적부터 외식업 쪽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잖아. 20대 중반에는 계속 외식업 관련한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해볼지 고민하다가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지. 그 사이에 외식업에서 아르바이트는 계속했고. 가구는 잘하고 싶은 것이었고 외식업은 잘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앞으로 둘 중에 어떤 것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어. 이것 말고도 다른 고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는 것이었어. 학창 시절부터 활발한 성격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 탓인지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면서 살았거든. 상처를 줄 당시에는 모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고 후회하고, 이걸 계속 반복하면서 살았더라고. 그즈음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너무 싫어졌고, 이런 면을 고쳐보자 해서 그때부터 붕 뜬 것 같은 성격을 누르려고 노력했지. 이전과는 다르게 살려고 했어. 그러다 보니 사람과 관계 맺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어. 가구와 외식업 모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외식업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처음엔 친구와 함께 망원동에서 ‘과일가게(술집)’를 1년간 운영하고 이후 ‘진주커피’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전통찻집을 해볼까 생각하게 됐는데 도저히 그쪽으로는 머리가 굴러가질 않아서 결국 다시 술집을 하게 됐어. 이번엔 오롯이 나 혼자 하는 술집으로.


거듭된 고민의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우주’에서 묵묵히 일상을 지키고 있다.


Q. 우주에 오면 항상 편해. 친구가 사장이라서 그렇겠지만, 이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의도한 건가?

A. 편안하게 느낀다니 너무 좋다. 지금까지 망원동에 술집 ‘과일가게’, 경남 진주에 카페 ‘진주커피’, 그리고 이곳 ‘우주’까지 총 세 곳의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점점 더 편한 공간을 만든 것 같아. 공간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편안함인데, 사람이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로 두 가지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첫 번째는 안과 바깥을 분리하는 것. 두 번째는 같은 톤의 통일된 소재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 예를 들어서 ‘우주’의 창은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었는데, 투명한 유리는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게 불편할 것 같다 판단했기 때문이야. 그래도 바깥 사람들이 안을 볼 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출입문에 작게 투명 유리창을 내긴 했지만. 이 부분 말고는 전부 막아버렸어. 또 네 면의 벽 전체를 비슷한 톤의 합판으로 둘렀어. 차분해 보이도록 하려고, 직접 목재상에 가서 옹이 없이 나뭇결만 보이는 합판으로 골라 구입했어. 최대한 톤이 비슷한 것들로 맞췄고, 색칠 대신 코팅만 해서 합판 고유의 색을 유지하게 만들었지.


우주는 편안한 공간을 꿈꾼다. 편안함이 우선이 되는 공간.


Q. 불광천변에 가게를 낸 것도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야?

A.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가게를 하려고 생각했을 때 어떤 동네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앞으로 소위 ‘홍대권’에 속할 수 있겠다 싶은 동네를 염두에 뒀어.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홍대권이라 불리는 곳에서 생활해 왔잖아. 그 권역이 계속 커지는 것을 목격했고. 그래서 홍대권에 있는 게 익숙하니까 편할 것 같았어. 그 확장된 홍대권을 나는 불광천변 새절 아래까지로 봤어. 몇몇 전문가들이 쓴 ‘장사하기 좋은 동네’와 같은 기사의 내용을 참고하기도 했어. ‘배후에 종합 대학이 있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는 피해야 한다’ 등.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근방에 명지대학교가 있고,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없으니까. 더욱이 불광천변의 자연환경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했어. 이 앞은 천변이라 시야에 건물만 들어오는 도시의 일반적 풍경이랑은 다르잖아. 그게 좋았어. 천변에 서서 북한산 쪽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좋더라고.


유년시절부터 함께 해 온 친구 간의 진솔하고도 편안했던 시간


Q. 우주에 오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어?

A. 요즘은 “음식 맛있어요” 보다 “음악 좋아요”라는 칭찬이 더 좋더라고. 음악은 결국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잖아? 공간 자체를 칭찬해주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 이곳에 오는 사람이 더 자주, 혹은 더 확실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더 많이는 아니어도 돼. 물론 더 많은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 한편에 있긴 하지만. 정리하자면, 한 번 오고 마는 술집보다는, 두 번, 세 번 오는 술집이면 좋겠어. 편안하게.


우주는 질감의 공간이다. 공간의 분위기는 텍스처가 돋보이는 요소들로 완성된다. 우주만의 소품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건 일종의 어른스러움을 벗을 때가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해’ 같은 일종의 긴장감을 풀 때. 네가 만든 공간은 어른이 다시 유년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너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주’를 만들었지만 손님에게 ‘우주’는 유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인 거지. 너는 어른으로서 그걸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에디터 조원용 Jo Wonyong

인터뷰 김종소리 Kim Jongsori

사진 김원 Leobinus

장소 우주 | 서대문구 증가로32길 23-7 (@inyour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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